“어이해 네 몸과 마음에는 봄이 오지 않느냐”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들과 가족들,
수배 후 첫 만남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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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경희대에서 열린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 가족 모임에서 오열하며 편지를 낭독하는 이산라 씨의 어머니와 이를 들으며 울고 있는 유영업 정치수배해제모임 대표. |
“어느새 깊은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구나. 요즘 들어 봄소식을 알리는 비는 자주 촉촉히 내리고 봄을 재촉하는구나. 봄을 맞이하겠다는 자목련은
잔뜩 기대에 부푼 몽우리를 터뜨릴 준비하고 미생물마저 꿈틀거리며 활기를 찾고 있건만, 어이해 네 마음과 몸에는 봄이 오지 않느냐….”
수배 3년째인 이산라(단국대·9기 한총련 대의원) 씨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현재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는 182명. 이들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7년째 창살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3월14일 경희대에서는 수배자와
그 가족들이 수배 후 처음 만나 서로를 부여잡고 기쁨과 원망의 눈물을 흘렸다.
설렘에서 다시 아픔으로
“참여정부에 희망을 걸어보자.”, “서럽고 힘들어도 우리 부모들이 참고 아이들을 보듬어주자.” 동병상련이랄까. 이날 모인 부모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얻었다.
“아들도 아닌 딸이 4년째 수배중”이라고 밝힌 부산대 임봉 씨의 어머니는 “우리의 자식들은 부끄러운 일을 해서 수배중인 게 아니”라며 “떳떳이
생활하자”고 말했다.
수배 7년째인 ‘정치수배해제모임’ 유영업(목포대·5기 한총련 의장권한대행) 대표의 어머니는 “영업이 아버지가 내년이면 환갑인데 아들과 함께
환갑잔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유씨의 아버지는 얼마 전 뇌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듣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유씨의 어머니는
“아들 걱정을 머리에 이고 정신없이 살다 ‘아차’하는 순간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예비수배자 이영훈(한신대·11기 한총련 의장권한대행) 씨는 “수배의 길을 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솔직히 잘 모른다”면서 “옳다고
배운 것을 옳다고 말하는 데 아픔을 주는 이 현실에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한총련 합법적 활동보장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 대표들과 수배자 가족 7명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면담을 가졌다.
대책위 권오헌 상임대표는 “문 수석으로부터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해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중이고 조만간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해 행사 참석자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정부는 정치수배해제의 봄을 허락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결정을 내렸다. 3월24일 법무부의 사면방침에 따르면, 4월말 또는
5월초쯤 양심수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키로 했지만, 한총련 관련자에 대한 수배해제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3월14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나 수배해제에 대한 고무적인 답변을 받은 상태여서 수배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창끝으로 가슴을 후벼파는
것처럼 아픈 소식이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