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여파로 공포와 불안에 허덕이는 중국
현재 그
어떤 공포 영화도 ‘사스’만큼의 공포감을 조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의 상황은 공포 영화에 비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환자처럼 모든 시간과 주변인들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위기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며칠 전 사스에 관한 은폐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중국의 언론들은 사실상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스와 관련된 일을 가장 중요시하라는 국가적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곳곳에서는 사스 환자수를 속이고 있다. 4월22일 중국 위생국이
발표한 사스 환자는 339명이었으나 외신은 약500명에 가까운 숫자일 거라고 보도해 여전히 은폐여부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독자들도 TV나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중국내의 사스공포가 얼마나 심각한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중국인이 없을
정도로 광활한 대륙의 나라는 사스의 무범지대가 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사재기 현상으로 생필품 부족
필자가 사는 곳은 베이징에서 소위 우리나라의 8학군이라 불리는 지역으로 중국의 수십 개 중요 대학이 소재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베이징대학을
비롯해 전영학원, 임업대학, 농업대학 등 유명대학에 사스 환자가 속출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의 불안감이 말도 못할 지경이다. 베이징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다는 필자의 학교(베이징어언대학)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들은 이미 휴교령을 내린 상태다. 한 교수 당 한두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제도로
교수들과 접촉 기회가 많았던 베이징대학과 전영학원의 경우는 사스에 감염된 교수가 발견돼 해당 학생들의 우려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전염병의 위험 속에 놓여 있는 중국은 한마디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버스나 택시,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는 어디로 꼭꼭 숨어 버렸는지 손님들을
구경하기 어렵다. 중국인들이 바글바글한 곳은 딱 한곳, 오직 슈퍼마켓이다. 사스로 인해 슈퍼마켓이나 대형할인매장이 당분간 영업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미리 사두려는 손님들로 붐비는 것이다. 덕분에 어느 슈퍼마켓을 가나 식료품은 물론, 각종 생활용품 진열대가 텅텅 비는
상황이 연출됐다. 인구만큼이나 수요도 많기 때문에 진열장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일반 감기약 사스예방약으로 둔갑
사스의 공포는 한편 중국인들에게 위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마스크를 적어도 4시간마다 빨아야 하고 손이 자주 닿는
곳은 2시간마다 깨끗한 걸레로 닦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이나 저녁에 꼭 창문을 열어 통풍을 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공공장소가 위험하다는
의식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아하던 맥도널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은 사람이 텅 비어있다. 이로 인해 식당 종업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매시간마다 소독 청소를 하며 손님을 끌기 위한 마지막 노력을 가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에 대한 관심은 이제 집착으로 이어져 약국마다 사스 예방과 관련된 의약품이 사재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슈퍼마켓의 식료품보다
훨씬 심각한데 마스크는 물론이고 사스를 예방한다는 소문이 난 반란껀이란 감기예방약이 품절되는 현상을 빚었다. 약국 측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약값을 최소 3배 이상 높이는 약삭빠른 태도를 취했다.
반란껀은 바이러스성 감기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높은 것으로 중국의 오래된 제약회사 동인당에서 예전에 만들어 낸 유명 감기예방약이다. 사스에
대한 예방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그 동안 중국 정부가 사스 환자수를 속여 왔기 때문에 베이징 시민들 역시 사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데서
비롯된 상황이다. 이 밖에 온도계를 찾는 베이징 시민들도 많아 온도계를 구입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휴교령 내리지 않아 불만 고조
사스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자 길거리에서 누군가 기침을 하면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하며 도망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사스의 공포가 최고조에 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귀국하고 있다.
중국의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들에서는 전체 휴교령을 내리지 않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베이징대학만 보더라도
학교 전체 휴교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중국 교육부와 베이징대학에서는 대학 전체 휴교를 결정 내리지 않은 것에 대해 명분을 추궁받고 있지만
침묵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베이징대학이 중국내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 휴교 결정을 내린다면 기타 모든
대학도 휴교 결정을 따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생명을 둘러싼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명분을 내세운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중국학생들은 며칠 전 휴교령이 내려졌는데 그나마 학생들이 총장에게 항의를 해서 겨우 내려진 것이다.
격리수용 남일 같지 않아 착잡
중국 정부는 4월22일, 500여명에 가까운 베이징시내 사스환자를 시민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자정12시쯤 다른 교외 지역으로 격리시켰다.
물론 사스에 아직 감염되지 않은 다른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사스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곳 시민들은 매우 착잡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알려졌다시피 사스가 아직 어떠한 예방도 불가능한 상태라서 중국인들은 이러한 사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스 연구에 대한 의견도
다르기 때문에 마음은 불편하지만 항변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저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 공포와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을
뿐이다.
경제발전 속도 세계 1위로 개선장군처럼 진격하던 중국이 사스의 공포로 전국민이 위축된 현 상황은 필자가 5년여의 중국 생활을 마감하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모습으로 남을 것이다.
조동은 <북경어언어언대학교 이중언어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