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두 달 앞두고 거세지는 저항
불안하다. 서울시 예정대로라면 착공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착공을 연기하라”는
신중한 입장에서부터 “복원을 반대한다”는 거부의 목소리까지 서울시의 복원사업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7월 1일 착공’에 대해 시민,
전문가 할 것 없이 한결같이 “서울시가 너무 서두른다”고 입을 모은다. 청계천 복원방식과 교통문제, 상인들과의 협의, 주변지역 활용방안
등 풀리지 않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서울시가 ‘7월 착공’을 못 박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너무 서두른다”
지난달 8일 경실련 등 8개 단체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여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각계 전문가들은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 방식은 환경과 생명의 가치 복원이라는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교통문제, 주변 상인과의 문제 등 착공이전에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서울시는 7월
착공을 연기하고 청계천 복원사업에 있어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보다 충분한 준비와 면밀한 사업계획을 수립한 이후에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 신철영 사무총장은 “경부고속철도나 인천국제공항 건설에서도 봐왔듯이 국가사업에 있어 초기 계획이 제대로 수립돼있지 않으면 이후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었다”고 지적하면서 “서울시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될 청계천 복원 사업도 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 아래 진행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신 총장은 “좀더 체계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을 바탕으로 공사를 해야 결과적으로 공기도 단축시킬 수 있고,
시민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어 7월1일 착공하는 것 보다는 착공을 늦추는 것이 결과적으로 예산 절약과 시민의 불편을 줄이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번 사태에 앞서 공청회나 토론회에서도 “서울시가 복원을 서두르지 말고 보다 다양한 견해에 관심을 기울여 비효율과 낭비를 줄여야한다”는
주장과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개발독재가 되살아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복원사업의 착공을 연기하자는 주장에 대해 이명박 서울시장은 ‘연기 불가, 7월 착공’의 단호한 입장이다. 이 시장은 “착공을 늦춘다면 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2년10개월에 걸친 고가도로보수공사에 착수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보수공사와 이후 복원공사까지 공사 기간이 5년 이상 소요돼
시민과 주변 상인의 불편만 가중될 뿐 아니라 보수공사에 따른 1,000억 원의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실련 박완기 서울시민사업국장은 “서울시가 올해 예산에 청계고가 보수공사비 18억원을 이미 책정해 놓은 데다, 서울시 건설안전본부도
부분보수만으로 당장의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면서 “결국 시민의 안전을 핑계로 내세운 서울시의 조급한 착공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만큼 그동안 제기된 친환경성 문제와 상인대책, 교통대책 등이 먼저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먹구구식 교통대책
지방선거와 맞물려 이슈로 떠오른 청계천 복원사업이 착공을 눈앞에 두기까지는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다. 청계천 복원이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은
불과 1년 전. 그리고 이 시장의 당선이후 불과 10개월 만에 복원계획이 만들어졌고 2년6개월 후면 청계천이 흐르게 된다. 하지만 순조로운
착공을 위해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친환경ㆍ생태’에서 ‘개발’로 옷을 바꿔 입은 복원 방식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교통문제와 상인들의 생존권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을 보지 못했다.
특히 교통문제는 청계천 복원사업에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을 앞두고 마련한 교통대책이 시행을 앞두고 수정되거나
연기돼 차질을 빚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교통대책이 실험가동 없이 착공일인 7월1일 직전에야 실시될 것으로 예상돼, 교통대란의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이 청계천 복원사업을 위해 도심 일방통행, 청계고가 우회도로 연결 등을 포함한 교통대책을 마련했지만 아직까지 교통체계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방 경찰청과 구체적 협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시간을 두고 일정기간 동안 청계천 고가도로의 차량을 통제하거나 일방통행을 실시해봄으로써 잘못된 점을 개선하고, 대중교통체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킨 뒤 복원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며 “교통통제 실험없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막대한 예산낭비와 함께 주변 상인과 시민의
불편을 가중시킬 것이란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다
청계천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인들에게 복원은 곧 생존의 위협이다. “바닥을 치고있는 경기 탓에 지금도 힘겨운데, 복원공사가 시작되면
삶의 터전마저 잃지 않겠냐”는 것이 상인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 300여 육교상가 상인들은 이미 철거를 통고받았다. 청계 고가도로 주변
대형상가 외벽에 나붙은 ‘청계천 복원에 반대한다’는 대형 현수막은 상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청계천상권수호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 시장의 정치적 명분 때문에 수만 명의 생존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되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복원후 상권의 미래에 대해 명확한 상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편, 영업손실 보상요구에 대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으며,
주변 노점상들에 대해서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원만하게 추진되기 위해서 시민들의 동의와 참여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계천 주변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갈등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시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가지고 상인들과 시민들을 설득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한다면, 서울시는 엄청난 반발과 갈등에 부딪칠 수 있다. 이는 결국 청계천 복원사업의 최대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청계천상권수호위원회 김태구 정책국장은 “복원이 얘기된 지 불과 1년 만에 착공한다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시절 밀어붙이기식 행정”이라며 현재의
복원계획을 유보하고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