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능력? 아니, 개성이야”
너도나도 성형·다이어트…여성계, 외모지상주의에 선전포고
“깜쪽같이 바꿔드립니다”, “한 번밖에 안 돼? 또 하구 싶어”,
“내 몸을 44사이즈로 바꿔봐”, “마시고 날씬해지는 물”. 길거리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는 성형외과와 다이어트
광고 카피들이다. 외모가 사람의 차이나 개성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받는 요즘, 여성들은 이러한 광고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대다수의
여성들이 밥을 굶어가며 혹은 약물을 써 가며 살을 빼고, 입소문을 좇아 성형외과에서 얼굴에 칼을 들이댄다. 이 시점에서 “외모가 전부는
아니니 성형과 무분별한 다이어트를 하지 말자”라고 한다면 너무 공허한 걸까?
한 해 미용산업 규모 7조5,000억원
자연적인 몸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선호하는 것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 꾸미고 손보지 않는 여성을
죄악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만연해 있다. 이러한 현실을 자신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대열에 동참하려는 여성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당연히 관련 산업은 폭발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여성들이 외모에 투자하는 비용은 미용성형 1조원, 다이어트 1조원, 화장품 5조5,000억원
등 무려 7조5,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의 이러한 외모지상주의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이 여성계에서 시작됐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의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에 대한 인식과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4월30일에는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5월6일, ‘노 다이어트 데이’에는 서울 명동 거리로 나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No다이어트 No성형 운동’을 전개하는 여성민우회 김상희 공동대표는 “무리한 다이어트와 무분별한 성형으로 사망하거나 자살하는 일이 이미
빈번해진 지금, 외모지상주의의 극복이야말로 여성계 최후의 과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다른 시민단체, 보건복지부 교육계 등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 위한 다이어트와 성형은 극소수
여성민우회가 4월7일∼18일, 여고생과 여대생 1,0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학생들은 겨우 10.9%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6.8%만이 만족한다고 답해, 대학생 15.9%에 비해 훨씬 외모에 불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조사 대상자들은 56.3%가 다이어트를 한 경험이 있었다. 문제는 정상체중이거나 저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뚱뚱하다고 여기는 학생들이
과반수에 가까운 49%를 차지한다는 것. 이 경우 무리한 다이어트가 거식증, 폭식증 등의 식이장애를 불러오고 자칫 생명이 위험할 가능성도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른 몸매가 예뻐 보여서’라는 응답이 64.9%로 가장 많았다. 입을 옷 사이즈가 없어서라는 응답자도
14.4%나 됐다. 기성복의 사이즈가 마른 여성들을 위한 것이 많기 때문에 살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옷은 사람의 몸에 맞춰 입는 것.
그런데 옷에 사람 몸을 맞춰야 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답은 3.4%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성형수술을 한 경우가 7.2%였지만 성형수술을 할 것이라는 답은 43.1%에 달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성형을 함으로써 86.7%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다이어트의 경우처럼 건강상의 이유로 성형을 하고 싶다는 답은 4.1%로 극히
소수였다. 응답자의 74.5%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형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답해 성형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 명진숙 간사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마른 몸매와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와 성형에
높은 관심과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여성 스스로 신체상을 건강하게 정립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가장 필요하다”면서, “사회적으로도 성형과 다이어트를 과도하게
조장하는 매체를 감시하고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 vs “여성상품화”
여성민우회는 실태조사와 함께 4월30일, ‘외모지상주의의 문제점 및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여성학과 교수, 성형외과
의사, 가정의학과 의사,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김경애 교수는 “외모지상주의에는 인종주의와 문화적 열등감이 내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잡지와 TV광고에 나오는 백인
여성 모델의 몸이 이상적인 외모로 제시되고, 높은 코와 쌍꺼풀 눈, 작은 얼굴, 긴 다리, 큰 키라는 서구식 기준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것이다.
한편 외모지상주의, 특히 성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BK성형외과 김병건 원장은 “결점을 고쳐 희망을 갖게 된다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대인기피증과 열등감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기 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보완하고 개선함으로써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게 낫다는 것. 그는 성형을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다”며 아내와 어머니, 여동생 모두 성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경애 교수는 “성형과 다이어트 산업이 아름답지 않은 여성과 뚱뚱한 여성을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으로 간주하며 상품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불법·부당 광고, 불법 시술 적극 대응
조정진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의사는 “체형보다 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땀 흘려 운동하는 다이어트가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단식이나 초저열량
식이 음식을 통한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영양소가 부족해지고, 저혈압, 담석증, 피부건조, 탈모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또 이뇨제나 호르몬, 주사제 등을 사용할 경우는 월경불순, 위출혈, 골다공증을 유발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지방흡입술도 수술 후 혈종,
감염, 폐지방색전증 등의 위험요소가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에서도 다이어트의 폐해를 심각하게 인식, 캠페인과 보건교육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김혜선 여성정책담당관은 밝혔다. 또한 그는 “여성의
외모를 강조하고 왜곡된 다이어트를 부추기는 인터넷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무분별한 광고도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성민우회는 ‘No다이어트 No성형’ 사이트(www.mom.womenlink.or.kr)와 전화(02-736-0092)를 통해 다이어트나
성형 수술의 후유증을 경험 한 이들의 사례를 접수받고 있다, 이를 통해 다이어트와 성형에 대한 불법·부당 광고 및 불법 시술 등의 사례가
드러날 경우,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