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섭 직원연대지부장 “2018년 장관 면담 특별지시로 근로감독관 조사...2019년 송치 후 감감무소식”
“노동법은 사회안전망...법치없는 나라 미래 없다”
[시사뉴스 김정기 기자] 2018년 5월. 서울 광화문에 벤데타 가면을 쓴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당시 언론을 달구던 사건은 대한항공 오너 일가 조현민 당시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
조 전무의 형제인 조현아 씨의 ‘땅콩회항’에 이어 한 방송매체를 통해 공개된 욕설과 괴성은 사회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에 직원들은 카카오톡을 이용 공개채팅방을 열었고 100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모여 함께 분노했다.
불이익을 우려한 직원들은 벤데타 가면을 쓰고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대한민국은 이들을 응원하며 함께 분노했다. 정치권은 대한항공 ‘직원들의 분노’에 응답하며 그들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 당시 노동부 장관이던 김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직원 대표들을 만나 그들의 요구를 들었고 직접 ‘근로감독’을 지시했다.
2020년. 과거의 약속들은 지켜지고 있을까?
촛불시위에 참석했던 직원들이 주축이 된 ‘대한항공직원연대’ 송민섭 지부장을 만나봤다.
- 간략하게 프로필을 설명하면?
1992년도에 입사해 ‘평범하게’ 근무하던 ‘평범한 직원’이었다. 2018년 물컵 갑질로 촉발된 촛불 집회를 거치며 ‘새로운 노동조합(현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가했다. 직원연대 초대 부지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올 7월 선거를 통해 지부장을 맡고 있다.
- 새로운 지부장에 출마 후 당선까지, 고민은 없었나?
2018년 5월 처음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설 때도 그랬고 현재도 같은 마음이다. 내가 ‘지부장으로 잘 활동 할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대한항공도 진짜 노동자를 위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함께 한다.
그럼에도 주변에 신념이 강한 동료들이 있다보니 힘이 난다.
직원연대의 간부들과 조합원들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처음 2018년도 카카오톡 단톡방에 모일 때도, 광화문에 설 때도 동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같은 꿈을 꾸기에 우리는 ‘진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 2018년 광화문 촛불집회는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블라인드 앱에서 시작된 당시 조양호 회장 일가에 각종 비리고발과 성토가 카카오톡 단체방으로 확대되며 총 4개의 방이 만들어졌다. 단톡방마다 최대 인원이 1000명이었으니 4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인 것이다.
대화를 통해 온라인을 넘어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하자는 다수의 의견이 나왔고 (톡방)관리자의 주도하에 4 차례에 걸친 광화문과 청와대 앞 촛불집회가 진행됐다. 또, 작은 규모의 산발적 게릴라 집회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제보가 이어졌고 참여연대의 고소를 통해 수사가 진행된 것도 있다. 이후 집회를 주도한 장본인이 땅콩회항의 피해자 박창진(현 정의당갑질근절특별위원장) 객실사무장과 예전 대한항공조종사노조를 설립과정에서 하효열 기장인 것이 밝혀졌다.
또한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 많은 시민단체의 인적 물적 지원이 있었다. 시위가 마무리 되며 변화된 대한항공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것은 당시 박창진 사무장의 노조 제명이었다.
박 사무장이 시위 과정에서 대한항공 기존 노조를 어용이라 표현했다며, 노조는 도움과 참여는커녕 오히려 20여 년간 조합비를 납부했던 조합원을 제명한 것이다. 결국 한국노총 산하 대한항공노동조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되었고 갑작스런 부산정비공장으로 전보발령을 받기도 했다. 당시 사건은 ‘부당전보발령’으로 서울지방노동청 제소와 국회 국정감사 등인 출석 등 정말 평범했던 직장생활은 더 이상 꿈구기 힘들게 되었다.(웃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이 예정되자 회사는 ‘갑작스런 전보발령’을 취소했고 서울로 돌아왔다. 대한항공 50년 역사에서 본인과 협의 및 통보없는 부산발령도 석 달 만에 이뤄진 서울발령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 그럼 직원연대노조는 광화문 촛불시위를 계승한 것인가?
2018년 촛불시위가 그간 억눌리고 참았던 직원들의 분노였다면 직원연대노조는 그동안 참고 억눌렸던 직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조합원들의 권리와 근로조건을 향상, 고용안정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조합이다. 촛불집회가 시작이었고 그 결과로 당당한 노동조합으로 탄생했다.
- 촛불시위라는 방법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이후 직원연대노조의 과제는 무엇인가?
대한항공 갑질논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땅콩회항 사건이다. 당시 국토부가 조사과정에서 박창진 전 사무장이 ‘회사가 짜놓은 각본대로 증언하지 않고 본인의 인권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실대로 진술’했다.
땅콩회항은 故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한 최초 ‘갑질 폭로’였고 전세계에 알려지며 한국 기업의 민낯이 드러났음에도 결국 재벌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2018년 조현민 당시 상무의 ‘물컵갑질 상황’ 또한 법에만 맡겼다면 모두 무죄판결을 통해 흐지부지 넘어갔을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 내 앞서간 직원들이 ‘가이포커스’ 가면을 쓰고서라도 광화문에 모이자고 뜻을 모았고 양심있는 시민들이 함께모여 정부에 ‘이대로 묻히면 안 된다’고 다 같이 악을 썼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회사는 바뀌지 않았고 ‘직원연대에 가입을 하면 제일 먼저 잘린다’ 또는 ‘진급을 안 시킨다’는 유언비어에 많은 동료가 떠났다. 심지어 관리부서에서 진급과 관련해 ‘직원연대에 가입 안했다는 증거를 내라’고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대한항공 사측은 직원연대 가입자 명단을 요구하며 몇 평 되지도 않는 노조사무실조차 주지 않고 있다.
- 명단을 사측에 통보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2018년 12월과 2019년 1월 초 조합원 명단을 회사와 기존 노조에 통보하고 활동을 하려고 한적이 있다. 그런데 노조는 우리 조합원 명단을 무단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기존 노조 위원장과 조합이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그 뒤 여러 가지 이유로 직원연대 조합원들의 명단을 비공개하고 있다. 사측과 기존 노조에서 보면 직원연대가 눈엣가시처럼 보일지 모르나, 우린 멈추지 않는다.
직장은 자신의 일생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곳이다. 그런 직장에서 많은 오너들의 갑질이 있었다, 오너의 폭력에 고개 숙이고 심지어 오너의 지시에 그 장면을 촬영까지 하고 천만원짜리 매를 맞고 물컵에 맞고 폭언 등을 들으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적 모멸감과 자존감이 무너지는데 아이들에게 ‘내가 참았듯 너도 참아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그런 사회를 우리 손으로 단절시켜야 한다. 내가 꿈꾸는 세상과 아이들에게 물려줄 시대를 위해서라도. 대한항공을 바꿈으로써 그 시작을 이루고 싶다.
- 당시 제기됐던 ‘대한항공의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여러문제들이 아직 해결이 안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진행사항이 어떻게 되는가?
2018년 광화문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직군이 객실승무직이었다. 그들의 경우 병원의 진단서가 없으면 휴가를 받을 수가 없다는 제보와 여성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생리휴가 또한 사용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들어왔다.
적체된 휴가가 1인당 100일에서 150일까지 쌓여있는 객실승무원들이 상당수였으니 정말 참담했다. 승무원 수 부족이 원인인데 사측은 휴가를 주려면 인원을 더 뽑아야 하니까 안 뽑고 그냥 버티고 있었던거다.
2018년도 8월, 당시 박창진 지부장 등 네명이 김영주 前 노동부 장관과 면담이 이뤄졌고, 해당사항에 대한 진정을 했다. 김 장관은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여승무원들의 생리휴가를 아직 사용 못하냐?’ 반문하며 배석한 담당 보좌관에게 관련 내용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그후 한 달 정도 후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장이 면담 자리를 통해 ‘조원태 회장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확인했다’며 서 조 회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 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2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 해당 사항과 관련해 어떤 결과도 듣지 못했다. 그 이후 여승무원들의 생리휴가는 제대로 나오고는 있기는 하다. 직원연대지부 활동이 없었으면 얻지 못할 결과였다.
-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인데, 처벌을 떠나 사측의 사과와 보상은 적절하게 이뤄졌는가?
적치된 연차휴가일 수 중 법적으로 미사용 연차수당은 임금에 해당되고 3년간 청구권이 있다고 한다. 사측은 최근 3년간의 연차휴가는 남겨두고 나머지는 연차수당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과는 받은 기억이 없다.
- 그럼 해결을 위해 직원연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해당 사건과 관련 검찰에서 조원태 회장을 한 번 정도 불러서 조사했다고 들었다. 우리는 장관 면담을 통해 직접 지시를 내린만큼 법 위반에 대한 처벌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대한민국 법 체계를 믿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검찰은 기소조차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벌이 대기업이 아무리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검찰에서 기소를 안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아무리 법이 있으면 뭘하나?
이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며 어쩌면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에 검찰이 ‘법을 지킬 것을 요구’ 할 예정이다.
송민섭 지부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라 강조한다. 또한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임에도 “오히려 법집행을 담당한 검찰에게 법대로 하자 요구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밝힌다. 또한, 사회적으로 큰영향을 미치고 리더로 활동하는 대기업과 재벌들의 양심을 지적한다.
“개인과 회사의 이윤추구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헌신해온 직원들을 회사의 구성요소가 아닌 사람으로 봐달다”라고 이야기한다.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우는 기업문화가 글로벌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대한항공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