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나라종금 수사’ 날 세웠다
검찰, “돈 받은 증거 있다”…한광옥, 박주선, 이명재 등 초긴장
검찰이
나라종금 로비의혹 재수사와 관련,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구속에 이어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의 소환조사를 하는
등 거침이 없다. 이전의 수사방식과는 판이하다. 한 마디로 속도전에다가 머리급부터 치고 있어 관련 정·관계 인사들이 초긴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실추된 위상을 재정립할 호기로 보고 있다.
이용근 이어 한광옥으로 넘어가
김호준 전 보성그룹회장이 경영위기에 처한 나라종금을 인수한 것은 1997년 11월.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IMF가 찾아왔고 나라종금은
곧바로 퇴출위기에 몰렸다. 그 해 12월, 나라종금은 1차 영업정지를 당했다. 1998년 5월에 영업을 재개했으나 결국 2000년 1월,
2차 영업정지를 당하고 같은 해 5월 퇴출됐다.
김 전 회장은 퇴출을 막기 위해 1차 영업정지 후 영업을 다시 재개한 1998년 5월, 안상태 씨에게 30억원을 주고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명목상 대표이사였고 건넨 돈은 스카우트비였지만, 실제로는 로비스트였고 로비자금이었다.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은 5월8일 안씨로부터 4,800만원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전 금감원장은 금품수수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으나
대가성은 부인하고 있으며 받은 돈도 ‘떡값’ 1,500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불똥은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에게로 튀었다. 검찰은 5월9일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이 보성그룹측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하고 나라종금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사건 관련자로 부터 “한 최고위원이 재보선 출마당시인 1999년 3월부터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시인 2000년 초까지 3∼4차례 걸쳐
정치자금조로 2∼3억원을 김호준 전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어느 정도의 물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 최고위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나라종금과 관련해 어떠한 로비명목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결코 없고, 반드시 그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박주선, 김희완, 이명재 등 줄줄이
이용근, 한광옥으로 검찰은 멈추지 않을 태세다.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인 정·관계 인사들은 검찰의 저인망 그물을 빠져나가기가 힘들 듯 하다.
민주당 박주선 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김희완 씨 등이 그 다음 차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한 최고위원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도 의혹이 불거진 만큼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 전 총장은 현직에 있던 1999년~2000년, 안상태
씨로부터 1,000~수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전 총장 역시 “안상태 씨와는 20년된 오랜 친구지만 안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동생인 이정재 현 금감위원장이 당시 금감원 부원장과 금감위 부위원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이 전 총장을 통한 로비를 벌였다는 추론이
쉽게 성립하는 만큼, 수사선상에서 비껴 가지는 않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학연과
지연 통한 로비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염동원 씨의 개입으로 초미의 관심사를 보였던 이 사건은 뚜껑을 열어보니 정·관계의 거물급들이 학연과 지연아래
이름으로 대거 연루돼 있었다.
의혹의 한가운데 있는 한광옥 최고위원,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나라종금의 주인이었던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과 중동고등학교 동문이다.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김 전 회장의 동생 효근(전 닉스 대표이사) 씨와 고려대학교 한 학번 차이 동문이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과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등은 로비스트로 영입된 안상태 나라종금 전 대표이사와 같은 전남 보성이 고향이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안상태 씨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오던 사이다.
이들에 대한 로비는 나라종금이 퇴출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던 시점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미루어 대가성임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
어렵다는 시기에 2조3,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잡아먹은 나라종금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의 떡값이나 정치자금을 선뜻 건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검찰, 명운회복 호기로 여겨
염동연 씨는 구속수감된 데 반해 안희정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두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등 말들이 많다. 법원은 “정치자금법위반혐의는
인정되나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데다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염씨와 안씨가 받은 돈의 성격을
다르게 판단한 것이었다. 염씨의 경우는 특가법상 알선수재혐의가, 안씨의 경우는 정치자금법위반혐의가 적용됐다.
염씨와 안씨가 받은 돈의 액수는 비슷하다. 염씨는 김호준 전 회장으로부터 2억8,800만원을 받았고, 안씨는 김 전회장의 동생 효근 씨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 다만 시기가 틀리다. 염씨는 로비가 집중되던 1999년 9월부터 2000년 2월 사이에 금품을 수수했다. 반면, 안씨는
김호준 전 회장이 나라종금을 인수하기 이전인 1997년 7월에 받았고 이를 자치경영연구원 운영확대개편용으로 사용했다고 일단 밝혀져 알선수재혐의를
적용하긴 어려웠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명운회복의 기회로 보고 있는 만큼 검찰을 두고 왈가왈부 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권에 휘둘리던 그간의
이미지를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생각이다. 5월9일에는 이용호 게이트와 진승현게이트에서 활동했던 홍만표 특별수사지원과장과 양부남 대검 연구관을
나라종금 수사팀에 급파했다.
검찰은 거론되고 있는 참고인 혹은 피의자들이 대가성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지만 거의 물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포괄적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 안상태 씨로부터 흘러나간 자금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받은 돈의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은 안희정 씨도 재소환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안씨가 불구속기소된
데 대해 검찰은 굉장한 불쾌감을 표현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안씨가 김효근 씨로부터 받은 돈의 사용처를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다.
만일 개인적으로 유용했을 경우는 업무상 횡령 혐의도 추가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