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 떠도는 ‘조상의 얼’ 찾기
해외 반출 문화재 7만5,266점, 환수는 극히 미미
문화재
반환운동이 민간차원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충북 제천시 의림포럼과 제천문화원 등이 문화재반환운동 범제천시민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만들고
본격적인 해외 밀반출 문화재에 대한 반환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 민간에서 문화재 반환운동이 시작됨으로써 그간 미온적이던 정부도 관망만
할 순 없을 전망이다.
“주장하지
않는 자에겐 기회 없다”
3월25일 결성된 추진위는 공동대표 송만배(제천시문화원장) 외 5명, 고문단 송광호(자민련 제천·단양) 외 9명, 자문위원단 40명, 추진기획단
30명, 추진위원 600여 명으로 참여 인원이 700명 가까이 된다. 제천시의 전체 상주인구가 10만 명 남짓 되는 작은 도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참여 열기가 매우 뜨겁다.
추진위는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한편, 문화재 반환운동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사이버 서명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일본의 언론과 양심적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재 반환을 호소하면서 논쟁을 유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일본의 민간사회단체 및 교포사회와도
꾸준히 교류를 추진해 정보를 수집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추진위의 1차 목표는 일본 덴리대에 보관중인 안견의 ‘몽유도원도’ 환수. 이를 위해 추진위는 시민대표단을 덴리대에 파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문화재반환운동은 일단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우선과제라는 게 추진위의 생각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너무 적다는 것. 이에 따라 지난
4월29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문화재반환운동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의원회관 로비에서는 5월2일까지 ‘일본 약탈 문화재 사진전시회’를
열어 일반에 홍보했다.
고문단의 한 사람인 엄태영 제천시장은 “아무리 정당한 권리일지라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구제의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면서 “약탈 문화재반환운동에
제천시가 첫 테이프를 끊고,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 때 문화재 약탈은 유행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현황조사에 따르면 2003년 1월 현재, 구한말 이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등 20여
개국에 7만5,266점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집계는 대부분 박물관에 보관된 것들이거나, 개인이 소장한 것일지라도 신문
등을 통해 알려진 것들. 따라서 해당 국가의 박물관에 등재되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의 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유출 사례는 약탈과 기증, 매매, 도굴에 의한 밀반출 등 다양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우리 문화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집·약탈했다.
일본은 문화재 약탈요강을 군부대에 하달하고, 조선의 문화재를 무제한 약탈할 것을 명령하기까지 했다.
품목은 고려 고분 도굴품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고려자기는 모두 무덤의 도굴품. 개성지방과 강화도 일대 고려왕릉을 비롯한 민묘(民墓)에
도굴을 자행했는데, 도굴을 면한 것이 거의 없을 정도.
목원대 사학과 김정동 교수는 “일본의 하급관리와 학자들까지 가세, 문화재 수집과 약탈은 하나의 유행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들이
절간의 동종, 불상 심지어 궁궐의 건축물까지 목표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현황을 조사하던 중, 경복궁
자선당이 오쿠라호텔 정원 장식품으로 전락한 사실을 발견, 환수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자선당은 세자들이 수학하던 건축물이다.
있으나마나한
국제협약
유출량에 비해 환수된 문화재의 수는 극히 미미하다. 지난해 8월 문화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립기관에서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한
건수는 일본, 미국, 뉴질랜드 등 3개국 4,491점에 불과했다.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것이 3,568건, 미국 730건, 뉴질랜드 193건이다.
환수 건수에서도 보이듯이 문화재 반환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네스코가 1970년,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과 1995년, ‘도난 또는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 반환에 관한 유니드로와(UNIDROIT)협약’을 결의했지만 별 실효성이 없다. 강대국들은 협약을 안중에 두고 있지도 않다. 이는
외규장각도서에 대한 반환 협상에 임하는 프랑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국제협약상 당연히 문화재를 돌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이 진행중이던 고속철도사업에서 자국의 TGV를 사면 도서를 반환하겠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프랑스는 이 마저도 지키지 않고 고속철도가 TGV로 결정되자 돌변, 외규장각도서와 비슷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주면 돌려주겠다는
억지를 썼다. 결국 정부는 2000년 10월 이에 합의하고 말았다.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수집·약탈한 일본은 1965년 한일협상 때의 합의의사록을 근거로 들며 반환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합의의사록에는
“일본측 대표는, 일본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한국 측에 기증함은 한일 양국 간 문화협력의 증진에 기여하게 될 것이므로, 정부로서는
이를 권장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일본 정부가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를 단지 “반환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고할 뿐이라는 뜻이다.
한편, 북한은 2002년, 북일평양선언에서 “문화재 문제에 대해 국교정상회담에서 성실히 협의하기로 규정했다”고 밝히며, 환수에 대한 길을
열어 놓고 있다.
문화재환수국 설치해야
문화재 환수를 위해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더 없이 중요하다. 김정동 교수는 “정부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르지만 효과가 없다”면서 “문화재환수국을 따로 둬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차원에서는 자금과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고,
활동의 폭도 제한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닥친다는 것. 김 교수는 “유출 문화재가 일본의 모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가 주거침입죄로
고발당한 적이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배기선 위원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하고 있다”면서 “문화재환수국 설치 건에 대해 검토
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외규장각도서에 대한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는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화재 반환운동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여론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그리스가 영국에 계속 항의하자 영국 내 지식인들이 ‘국제적 망신’이라며 문화재를 돌려주자는 모임을 결성했다”면서
“서명운동과 제품불매운동 등으로 상대국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고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문화재 반환운동이 일회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960년부터 자이르가 벨기에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해 1977년에야
그 뜻을 이뤘듯이, 아이슬란드가 1944년부터 시작해 1971년에 반환 받았듯이 지속적으로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