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63% 법정관리 반대
골드만삭스, 진로의 정상화 왜 막나
진로의 법정관리 수용 판결이 또 다시
연기 됐다. 당초 지난 2일 발표를 할 예정이었으나, 6일로 연기됐다가 다시 연기된 것이다. 판결은 5월 중순께나 나올 것으로 예상돼 진로건에
대한 법원의 고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건이 법정관리를 회사가 아닌 채권자가 신청한 특이한 사례이고, 양쪽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어, 법원이 장고를
거듭하고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소주로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한 국민기업인 진로마저 해외자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들의 우려도 재판부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진로의 운명은 이달 중순께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의 신청이 기각돼 진로가 주장하는 대로 외자를 끌어와
화의를 종결지울 수 있을지, 아니면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될지 법원의 판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세나의
법적지위(?)
골드만삭스 계열사 세나 인베스트먼츠가 4월 초 법정관리 신청으로 촉발된 진로와 골드만삭스간 공방은 나날이 치열해 지고 있다. 최종 판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법정관리 신청의 합법성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그 여부에 따라 판결이 뒤바뀔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진로는 먼저 법정관리를 신청한 골드만삭스 계열사 세나 인베스트먼츠의 법률적 지위와 신청의 합법성을 문제 삼았다.
진로측 주장에 따르면 법정관리를 신청한 세나 인베스트먼츠는 골드만삭스가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라는 것. 페이퍼 컴퍼니는 말 그대로 서류상의
회사 즉, 종업원과 사무실 등 인적ㆍ물적 실체가 없는 형식상의 서류회사를 일컫는 것으로 채무면탈이나 소송회피 목적에 주로 이용된다.
진로는 “세나 인베스트먼츠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법률사무소를 본점 소재지로 설립된 업체로 소속 변호사들이 등기이사로 돼 있고, 실제는
골드만삭스가 운영하는 페이퍼 컴퍼니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진로측은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11월27일 아일랜드에 세나 인베스트먼츠를 설립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3개월 전인 지난 1월7일 세나
인베스트먼츠에 진로 채권 870억원을 양도했다”며 “이번 법정관리 신청은 국내 판례가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소송신탁에 해당함에 따라서
법정관리 신청 자체를 원천 무효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측은 “세나 인베스트먼츠는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며 필요한 자본금과 이사회 등의 법인 실체를 갖추고 있다”며 “한국 법에
따라 적법하게 진로의 부실채권을 인수했고 다른 회사 채권도 관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내 채권자들만 피해 볼 수도
한편 세나 인베스트먼츠의 법적 지위문제와는 별도로 법정관리 신청권의 남용 문제도 논란거리다. 회사정리법상으로 채권자 다수가 반대하는 가운데도
일부 소수의 채권자나 주주의 요구만으로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개시절차가 가능한 데 대해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나 인베스트먼츠가 가진 채권은 870억원으로 진로의 전체 부채 1조8,000억원 가운데 5%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로 자본금 7,360억원의
10%가 넘기 때문에 회사정리법상 법정관리 신청이 가능했다.
회사정리법에 따르면 △당사자 회사이거나 △자본의 10분의 1 이상의 채권을 가진 채권자 △발행주식 총수의 10분의 1 이상을 가진 주주
등이 법정관리 신청을 할 수 있다. 진로의 경우 730억원 이상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채권자는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다.
세나 인베스트먼트가 전체 부채의 5%도 안 되는 채권으로 진로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도 이같은 규정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세나
인베스트먼츠의 법정관리 신청은 대다수 국내 채권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나 인베스트먼츠의 일방적인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 질 경우, 국내 채권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예금보험공사 및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국내 채권자 대부분이 법정관리를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로는 “총채권자 97사 중 72개사가 반대했으며, 채권액으로는 총 2조945억 원 중 1조3,311억원(63.6%)이 법정관리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결국 골드만삭스 포함 외국계 4개사만(채권액 4,865억 원, 23.2%)이 법정관리를 찬성하는
것이다.
기각 가능성은
회사정리법에 따르면 △화의기업의 경우 그 절차에 의함이 채권자 일반의 이익에 적합할 때(동조항 제4호) △신청자의 신청이 성실치 않을 때(동조항
제8호)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최대의 쟁점은 ‘채권자들의 이익’과 ‘신청의 성실성’이다. 법정관리 신청되기 전까지만 해도 진로는 조만간 1조600억원
가량의 외자유치 계약을 체결할 예정으로 있는 등 정상화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한 진로채권자는 “골드만삭스가 기업 정상화되기 직전에 법정관리
신청을 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며 법정관리 신청에 의문을 제기했다. 진로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기업가치가 하락해 채권가치가
떨어지고, 상환기간도 연장될 수밖에 없다는 게 국내 채권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진로 채권의 10% 이상을 보유한 골드만삭스 입장에서도 외자유치 성사로 회사가 정상화되는 것에 비해 법정관리가 결코 유리할 수 없는 만큼
이번 법정관리 신청에는 보유채권의 고가매각 등 또 다른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법정관리에 넣겠다며 자신을 협박, 다른 것은 얻어내려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진로는 “골드만삭스는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진로의 구조조정을 방해해 왔으며 이번 법정관리 신청도 향후 채권자들과의 채무조정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기만적인
행동”이라며 “골드만삭스의 신청에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진로는 5년간의 채무유예에도 불구하고 올해부터 분할 변제해야 하는 화의채무 원금을 갚지 못했다”며 “외자유치가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계열사 지급보증도 동반부실 우려가 있기 때문에 법정관리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법원은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신청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로의 외자유치 계획이 현실성이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 국익을 살펴야 한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