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탐험을 다녀온 기분이에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반문화체험, ‘1:1
레저버디’
“긴탐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요. 휠체어를
이용해 혼자서 처음 타본 지하철이며, 장애인전용 택시, 63빌딩 수족관 관람에, 한강공원 산책까지. 덕분에 너무 좋았습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문화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1:1 레저버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반인과 장애인들이 영화나 연극을 감상하거나, 1박2일 동안 여행하는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행사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레저버디에 참가하는 일반인들의 손길은 고맙기만 하다.
지체장애인 강선욱 씨와의 일일 데이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유정 간사로부터 소개받은 강선욱(49) 씨는 선천성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이다. 온라인에서 강선비라는 예명을 즐겨
쓰는 그는 데이트 신청자인 기자와의 첫 통화에서부터 기대에 부푼 목소리였다.
그는 얼마 전 레저버디를 신청했다가 상대방의 사정으로 데이트를 못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때 이미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놓았다는 말에
장애인과의 동행이 처음인 기자는 불안하기만 했다.
데이트가 약속된 6월17일 오전,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전화가 왔다. 벌써 약속장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이다. 먼저 도착해 맞아야겠다는
기자의 계획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오전 10시30분 총신대역, 깨끗하게 손질한 구두를 신고, 양손에 스포츠 장갑을 낀 채 휠체어를 타고 있는 강씨를 만날 수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해 혼자서 지하철을 처음 타봤다는 강씨. 평소에는 외출 할 때 자신의 티코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오늘만큼은 경험을 쌓기 위해
휠체어에 몸을 실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2시간30분전에 출발했다고 하니 그에겐 첫 경험(?)인
만큼 불안감도 컸나 보다.
지하철
타기 너무 힘들어
인사를 나누기가 바쁘게 강씨는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씨는 집근처 4호선 범계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얼마 전 100만원
가까이 주고 구입한 착·탈식 전동 휠체어가 말썽을 부렸다고 했다. 그는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기능 점검도 없이 물건을 팔아먹는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의 지하철 시승기는 이렇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리프트를 향해 내려오는데 휠체어가 갑자기 빨라지더라고요. 급하게 핸들을 돌려서 멈췄습니다. 안그랬다면, 아휴
어느 한 군데라도 부러졌을 거예요.”
두 번째 고비는 리프트.
“리프트를 탔는데 제대로 작동하질 않더라고요. 다행히도 다섯 명의 역무원들이 나와서 어렵지 않게 지하철을 탈 수 있었죠. 리프트가 움직이니까
음악도 나오대요.”
어렵사리 약속장소인 이수역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그곳에서도 발생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출구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역무원에게 출구를 물어봤죠. 그런데 그 사람 성질한 번 고약하대요. 버럭 소리부터 지르더니
귀찮다는 듯 가르쳐 주더라고요. 저도 대뜸 화를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어 담을 수도 없고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기자는 문득 그의 말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홀대받는 것이 분하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이동권연대 등 장애인 단체에서 장애인 이동권문제로 데모를 하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게 얼마나
필요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더 강력하게 주장해야겠더라고요.”
지하철 사건에 대한 그의 마지막 소감이다.
장애인 택시기사 대우 높여줘야
강씨와 기자의 데이트는 시작됐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미리 부른 장애인전용 택시가 도착해 있었다. 장애인 택시는 스타렉스 차량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장애인들이 휄체어를 탄채 리프트를 이용해 탑승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해 보였다.
택시를 타고 데이트 장소인 63빌딩 수족관으로 향했다. 강씨는 처음 타보는 장애인 택시가 “아주 편리하다”며 만족해했다.
그는 이동하는 중에 택시 기사와 장애인 택시 기사들의 처우 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기사에 따르면 장애인 택시는
현재 서울에서만 100대가 운행된다고 한다.
이 택시들은 모두 서울시에 소속돼 있으며, 일반 택시에 비해 약 40%가량 싼 가격에 손님을 모신다고 한다. 강씨는 “장애인 택시 기사들에
대해서 공무원에 준하는 처우가 필요하다”며, “그래야만 장애인들이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63빌딩에 도착해 곧바로 수족관으로 향했다. “시간은 많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움직이자”는 강씨, 일반인들에 비해 이동이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럴수록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수족관 매표소 앞에서 그는 자신의 장애인 카드와 돈을 내밀며 “장애인과 봉사자가 함께 할 경우 50%의 할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수족관에 들어서자 강씨는 연신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꼭 와보고 싶었다”면서 “혹시 재미없진 않냐?”고 기자를 배려하는 강씨.
기자가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라고 대답하니 그제서야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강씨의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했다. 물론 기자에 비해 아는 것도 훨씬 많았다. 자신의 컴퓨터에 수 백장이 넘는 물고기 사진이 저장돼
있다며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찰하는 모습에서 동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실제로는 처음 보는 물고기지만, 사진을 통해서 본 놈(?)들에게는 구면임을 강조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자신이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에 한컷 한컷 기록 남기기에 여념 없는 그의 모습에서 기자는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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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장애인전용 택시를 타면서 "매우 편리하다"며 "장애인 택시기사들에게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 우리도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것"이라 말했다. |
비장애인에게도 소중한 추억
오후 1시30분을 넘긴 시각, 강씨와 기자는 점심을 먹고 데이트 장소를 한강 둔치로 옮겼다. 소나기성 비가 올 것이라는 전날 일기예보와는
달리 다행히도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캔 커피를 마시며, 강씨와 기자는 서로의 관심사를 찾아 대화를 나눴다. 그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휠체어와 컴퓨터,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데이트 내내 자신이 얼마전 구입한 전동 휠체어의 문제점을 이것저것
설명했다. 그리고 문제가 많은 전동차를 판매한 회사의 비양심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오후 4시, 강씨와 기자는 장애인 전용 택시를 타고 처음 만난 이수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그의 집까지 함게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잠시 고민을 하던 강씨가 “그냥 택시를 타고 안양까지 가자”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다시는 지하철 안타겠다”고 했던 그의
농 섞인 말이 떠올랐다. 말다툼을 한 그 역무원이 신경 쓰였나보다.
마지막 데이트 장소로 일행이 찾아간 곳은 안양의 한 공원. 강씨와 기자는 그곳에서 레저버디에 대한 평가 시간을 가졌다. 그는 “하루동안
긴 여행을 한 것 같고, 이제 막 신나는 탐험을 끝낸 기분”이라며, 기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사실 취재와 병행하면서 가볍게 봉사활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나섰던 기자는 그로부터 장애인들이 생활에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애로사항을 자세히 알게됐고, 그들과 마음을 공유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쪽은 기자였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
1:1 레저버디 참가 문의 02-521-53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