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국민 위한 사법부가 아니었다”
"사법개혁
참여정부 임기 내 가능하다
법원 수뇌부 기득권 버려야"
현직법관
26명이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연명(聯名)으로 대법원장에게 전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미 법조계 내부에서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사법개혁이 참여정부 출범 초기, 강력한 개혁드라이브에 편승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01년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법관 33명의 모임인 ‘법관공동회의’ 결성에 앞장섰고, 이번 사법개혁 건의문 작성에도 주도적 역할을 한 문흥수(사시21회)
서울지법 민사1부 부장판사를 만나, 건의문 작성의 배경과 사법개혁 필요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법개혁 건의문에는 △법원민주화를 위한 법관들의 활발한 의견개진 통로 확립 △피라미드식 법관인사제도 탈피 △사법부 독립의 근간인 법관인사의
공정성·객관성·합리성·투명성 확보 △대법원 구성에 개혁적·진보적 인사 참여 보장 △법관의 끊임없는 재교육 △전관예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법조일원화의 실질적 시행에 의한 사법부 구성의 선진화 등의 주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문 판사는 “법관들이 재판을 하는데 있어서 승진을 의식하게 되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며 “때문에 법관 인사는
공정한 시스템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 동안 여러 차례 사법개혁의 기회가 있었지만, 사안마다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고, 무엇보다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법원 수뇌부들의
관료주의를 꼬집었다.
그는 이번 사법개혁 건의문 작성 배경에 대해서, “지난 3월 결성된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 구성에 문제가 있고, 대법원에서 이번에도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매번 사법개혁이 제기될 때마다 언론들이 일회성으로 다루는 등, 잘못된 보도 행태를 보여 왔다”며 이번 만큼은 언론 역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주문했다.
사법개혁 건의문을 작성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법원개혁의 문제는 지난 1995년 YS 정권 당시 청와대에서 로스쿨과 함께 전관예우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 많이 알려졌다.
이후 1998년 의정부지원 떡값문제에 이어 1999년 대전법조비리(이종기 변호사 떡값문제)사건이 발생해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한편,
국민의 정부 초기에 청와대에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했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올해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원 내부의 ‘법관공동회의’ 등 개혁적 판사들 사이에서 ‘법원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에 따라 대법원에서도 지난 3월 ‘인사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대법원 수뇌부들은 현재 법원의 문제점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그런 사람들이 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으로 선임됐다. 이번에도 개혁이 유야무야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에 건의문을 작성한 것이다.
정권초기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와 판사들의 사법개혁요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검사와의 대화하고는 본질적으로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의 경우 오히려 청와대가 법무장관 내정과 인사를 통해 검찰개혁을 하려하자 검사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법개혁의 경우 일선 판사들이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반대다. 그리고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는 검사 쪽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는가?
그동안 법원은 국민들을 위한 열린 사법부라는 인식보다는 폐쇄적이고 사법부 자체를 위한 사법부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법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개혁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법원내부의 큰 흐름 때문일 것이다. 전관예우가 문제다. 판사로서 재직하다가 변호사
개업하게되면 돈방석에 앉게 된다.
명예와 부를 다 누리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법원의 수뇌부들은 지금의 시스템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기득권을 포기해야 올바른 법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문 판사가 지나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혼자서 싸우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는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사안에 대해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기사를 쓰기보다는 일부의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라.
이 번에도 언론이 내 이야기만을 주로 듣고 기사를 쓰기 때문에 나에 대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하지만 학계, 시민단체, 언론에서는 내 주장에 대해서 거의 100% 지지한다. 단지 대법원의 수뇌부만이 내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인사개혁만으로
사법부 개혁이 이루어지는가?
인사가 만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의상달 대화, 현장에서 느끼는 일들이 위로 전달이 되어야 개선이 될 수 있는 것인데,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면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이다. 관료사회의 폐단이다.
지금의 시스템은 법원의 기득권 층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문제를 제기하는 판사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인사제도의 문제점 때문이다.
이번 건의문을 전달할 때도 처음에는 100명 정도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름을 발표하자니까 다들 빠지더라 이게 문제가 아니고 뭐겠는가?
인간관계를 의식하게끔 되어있는 인사 시스템에 대한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얼마전에 대구가톨릭대 신평 교수가 논문을 통해 현재 대법원 수뇌부의 사퇴를 주장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이번 건의서도 법관의 신분보장을 주장하고 있는데, 임기가 보장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퇴하라 마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 이 번 건의서에 대해서 수뇌부들이 시대적 흐름을 인식하고, 실질적인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끝으로 한마디 부탁한다.
사법개혁에 대한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다. 언론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고, 학계 시민단체들도 토론회 공청회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늦어도 참여정부 임기내에 사법개혁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