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른 인터넷 유료 콘텐츠
'060 결제서비스' 보안 시급
지난
6월, 7개월 동안 무려 170여 만원의 인터넷 콘텐츠를 사용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부모에게 야단을 맞은 후 목을 매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관련 업계의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정부 정책으로 한국의 IT산업이 세계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인터넷의 역기능으로
인해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청소년 문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인터넷 유료콘텐츠의 과다 사용과 구멍 뚫린 결제 방식의
보완을 주장하고 나섰다.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실태와 문제점 및 해결 방안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죽음으로 내몬 인터넷콘텐츠
지난 6월25일 수원에 사는 초등학생 강(11)양은 5월 분 인터넷 유료컨텐츠 이용요금이 20여 만원이상 나오자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이 학생이 인터넷 유료콘텐츠를 사용한 것은 5월만이 아니었다. 경찰조사결과 강 양은 지난해 12월부터 5월까지 총 170만원이 넘는 돈을
유료콘텐츠 구입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강 양의 어머니는 "엄마는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는데 이런데 돈을 쓰면 어떡하냐"며 아이를 혼냈다고 진술했다. 어머니께
야단을 맞은 강 양은 자신의 방에서 이동식 옷걸이에 목을 맸다.
강 양 언니의 진술에 따르면 강 양은 평소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으며, 방과 후 하루종일 인터넷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한 인터넷의 무분별한 사용은 급기야 미쳐 피우지도 못한 열한 살 초등학생을 죽음으로 몰았다.
사이버공간의
또 다른 나 '아바타'
올해 나이 스물 다섯인 직장인 김모씨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그는 요즘 채팅에 재미를 붙였다. 채팅을 위해 S채팅 사이트를
주로 이용한다는 김 씨는 채팅을 하면서 아바타를 꾸미는데 상당한 돈을 투자했다.
"채팅을 하다보면 화려하게 꾸민 아바타들이 많거든요. 그들과 비교해 내 아바타가 초라해 보일 때가 많아요. 때문에 아바타를 꾸미게 돼죠.
물론 아바타는 내가 아니지만, 사이버 상에서는 나를 대변하는 분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씨의 이야기처럼 사이버 상에서 아바타는 이용자를 대변해주는 분신과 같은 존재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런 믿음은 더욱 강하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센터(예방센터)이수진 박사는 "어른들이 명품을 구입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아바타에
필요한 옷이며, 장식품을 구입하는 심리는 같다"며, "어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사이버 공간 안에서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를 예쁘고
새롭게 꾸미고 싶어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러나 아이들은 분별력과 자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제생활과 함께 돈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우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구멍난 결재방식
게임, 채팅, 음악 등 유료컨텐츠 제공업체들은 결제방식으로 신용카드, 휴대전화, 자동응답서비스(ARS),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결제를 대행하는 PG업체에서 개발하는 솔루션에 따라 기타 다양한 방법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상품권을 이용한 결제방식도 선보였다.
이들 중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해 문제가 되고 있는 결제 방식은 일반전화(ARS)를 이용하는 '060서비스'다. 이 방식은 KT(060-700-××××)
데이콤(060-600-××××) 하나로통신(060-800-××××) 온세통신(060-900-××××) 등 유선전화업체가 제공하는 전화결제시스템으로
미성년인 사용자가 별도의 보호자 확인 절차 없이 결제가 가능하다. 결제 또한 사용후 한 달 이후에나 일반전화 고지서에 함께 발송되며, 상세한
설명 없이 '정보이용료' 항목으로 책정돼 나오기 때문에, 자동이체를 하거나 고지서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 가정에서는 자신의 자녀가 유료콘텐츠를
사용하고 있는 것조차 모를 수 도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소보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성년자 유료콘텐츠 결재로 인한 피해구제 사례만 130여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번에
자살한 강 양 역시 H사의 060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060서비스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업체들도 선호하는 결제 방식이다. 신용카드나 현금입금에 비해 손쉽게 돈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공업체에서는 사용자들이 돈을 내기 전에 먼저 결제에 이용할 유선전화 번호를 인터넷상에 입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사용자가 060으로
전화를 걸어 결제를 요청하면, 인터넷에 입력한 전화번호와 발신자번호의 일치여부만을 확인한 후 요금을 부과한다. 전화번호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결재방식 하에서는 유료콘텐츠 구입을 원하는 청소년이면 누구나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구입 할 수 있다.
한 게임의 채선주 홍보팀장은 "미성년자들의 ARS결제 건에 대해서는 항상 체크를 통해 사용량이 많은 경우 직접 연락을 해 확인할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화상 결제를 하지 않는 한 사용자가 누군지를 직접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막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모
동의 없는 결제, 환불 가능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이 증가하고, 그에 따른 문제들이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 2002년 정보통신 및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 만
14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콘텐츠 제공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부모 또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그래서 만약 부모의 동의 없이 가입이나
결재가 이루어질 경우 피해액 전액을 업체로부터 환불받을 수 있도록 보장했다. 소보원 조사팀의 여춘엽 차장은 "미성년자가 부모의 신분증을
이용해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역시 부모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콘텐츠를 결제하는 등 위법한 경우에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통신위원회 반상권 과장은 "미성년자 결제 피해액에 대해서 부모의 동의가 없었다면 돌려 받을 수 있는데도 상당수 부모가 이런 사실이나 방법을
몰라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살한 강 양의 부모 역시 이런 사실을 몰라 요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형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만 14세 미만 아이들에게 매월 5만원 정도의 결제한도를 정해 과다 사용을
막고 있다. 그러나 결제한도제가 정부의 방침이 아닌 업계 자율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관심조차 갖고 있는 않다.
이에 대해 소보원 여춘엽 과장은 "미성년자 가입절차의 경우 부모의 이름이나 주민등록 번호만 알아내면 쉽게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재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결제한도제의 경우 모든 업체가 각각의 결제한도를 정한다해도 사용자가 여러 업체의 콘텐츠를 동시에 이용하게 된다면 결제한도는
무의미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인터넷 사용습관 필요
우리나라 인터넷 사용 인구는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는 2천6백 만 명을 넘어 섰다. 인터넷이 마비된다면 우리 사회는 공황에 빠질 것이다.
그 만큼 사이버 세상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방센터 이수진 박사는 "자녀의 인터넷 사용을 무조건 막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공산이 크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올바른 사용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유료콘텐츠 업체들은 "기업의 영리를 위해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무분별한 인터넷 사용을 조장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