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가 세계를 지배한다?
출생순서와 인격형성 상관도 ‘믿거나 혹은 말거나’
얼마
전 재밌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남녀를 불문하고 맏이나 막내보다는 가운데 아이의 자살 기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보고였다. 태국 국립 개발행정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가운데 아이가 집에서 맏이나 막내에 밀려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적절한 사회 적응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우울증에 쉽게 빠져 자살율이 높다고 한다. 과연 출생순서와 자살율은 관련이 있을까? 출생순서와 인격형성의 관계는? 어떠한 상관도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그냥 간과하기에는 왠지 미심쩍은 통설들. ‘믿거나 말거나’ 한번 알아보자.
출세지향적 야심가 첫째
30년 가까이 가족 내 출생순서와 성격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온 MIT 교수 프랭크 설로웨이는 1996년 ‘반항적인 탄생(Born to
rebel)’에서 “형제 자매간에 부모로부터 감정적이고 육체적이며, 지적인 요소들을 가지기 위한 경쟁의식은 어른이 된 후의 인격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지적했다. 즉, 형제 자매간의 경쟁은 성장기에 직접적인 형태의 경쟁이며, 형제 자매간에 살아남기 위해, 가정 내의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고 방어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첫째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들을 모방하고 즐겁게 하며, 때때로 동생들을 통제하기도 하고, 보살피기도 한다. 부모들은 첫째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이에 첫째는 부모와 동일시하며 부모의 권위를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동생들에 비해, 첫째는 외향적이고 자신감에 차 있지만, 반면
순응적이며 보수적이다. 그리고 보다 양심적이며, 학문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통솔력과 권위의식이 많다.
때문에 대체로 첫째가 가장 야심적이고 출세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의 육아전문가 마이클 그로스는 지난 8월, 자신의 저서 ‘왜
맏이가 세계를 지배하고 막내는 그것을 바꾸려 하는가’를 통해 “맏이는 진지하고 의지가 굳어 법조계나 의학계로 나가는 경향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의 절반 이상, 노벨 수상자의 대부분이 맏이라면서 윈스턴 처칠, 사담 후세인, 스탈린,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을
예로 들었다.
또한, CEO나 유명한 정치인이 된 첫째들은 조직 내에서 그들의 성취성향을 통해 사업을 번성하게 하고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꼼꼼하게
일을 챙긴다. 부모에게서 조그만 사업체를 물려받아 절제된 경영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화장품 회사의 하나로 키워놓은 ‘에스티 로더’의
레오나르드 로더가 그 대표적 사례다.
외교적이고
모험심 강한 둘째
둘째는 첫째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족의 구조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둘째는 첫째에 비해
유연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개방적이며, 감정적이고 이기적이다. 또한, 보다 창의적이고 반항적이며 자유롭고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정의와 공정함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둘째의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마디로 ‘어중간’하다는 것이다. 첫째가 가지고 있는 장악력도 부족하고, 관심도에서도 막내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둘째는 나름대로 자신의 자리를 구축할 방법을 찾게 된다. 때문에 보다 외교적이고 정치적이어야 함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고,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정치적 경향이 짙으며, 협상과 타협에 능하다. 또한 둘째는 잃어버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고, 위험한
일에도 쉽게 도전하는 등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둘째가 부모와 거리감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년, 도쿄대 대학원 인지행동과학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부모와의 친밀감이 다른
형제 중에서 둘째가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캐나다의 연구팀도 “둘째는 첫째와 막내에 비해 부모를 친밀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첫째는 부모의 관심을 독점하는 기간이 있고, 막내도 밑에 자녀가 없기 때문에 부모의 손길을 많이 타지만 둘째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이런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우유부단하고 의존적인 막내
동화에서 큰 승리의 몫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막내다. 심리학자 브라이언 서튼과 B.G. 로젠버그가 112편의 그림동화를 살펴본 결과
그림동화 중 92%에서 막내가 시기하는 형제에서부터 사악한 도깨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암암리에
막내가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특권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따라서 막내들은 자기방식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매우 짙고, 그렇게 안 됐을
경우 울분을 참지 못한다.
부모가 막내를 자신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조장하는 경우도 많다. 막내는 부모의 ‘크나큰’ 사랑을 후광에 짊어지고 자기의 지위를 보전할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막내들이 책임감 없고 속임수를 쓰며, 떼를 쓰는 아이가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매우 자유로워 보이는 막내는 실제로 전혀 그렇지 못하다. 조직에 속해 있기를 좋아하고, 우유부단하며 결단 내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부모나
손위 형제들에게 응석과 어리광을 부려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왔기 때문에 독립심도 부족하다.
한편, 외동은 첫째와 비슷해 성취 지향적이며 부모를 즐겁게 하는데 적극적이다. 쌍둥이들은 서로 비슷하며, 다른 형제 자매들보다는 서로간에
경쟁심이 덜한 편이다. 아래와 위에 어떠한 그리고 얼마나 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느냐에 따라 첫째를 닮기도 하고, 가운데 아이를 닮기도 하고,
막내를 닮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껏 알아본 출생순서의 일반적 패턴은 예외의 경우가 많다. 성별이나 신체적 특징, 사회경제적 계층, 가족규모, 자녀와 부모사이의
갈등 정도 등이 인격형성에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