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은 왜 이라크전을 부추겼나?
전설의 종군기자 피터 아넷이 밝히는 전쟁보도의 진실과 국익
“전쟁
중에도 언론은 정부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론재단의 초청으로 9월14일 한국에 온 유명한 종군기자 피터 아넷(66)은 전쟁보도에 있어서 정부와 언론의 관계에 대해 이 같이 주장했다.
아넷은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진실’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훼손되는 현 상황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전쟁 취재를 위해 태어난 사람
살아있는 전설이 된 종군기자 피터 아넷은 전장를 좇는 것이 숙명인 사람이다. 미국 CNN 방송의 뉴스 프로듀서 로버트 위너는 ‘바그다드
생방송’이라는 저서에서 그를 가리켜 “전쟁취재를 위해 태어난 이 시대의 마지막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넷은 40여 년을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20여 개의 크고 작은 전쟁을 취재했다. 1960년대 베트남 엘살바도르 앙골라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는 1966년 라오스 쿠테타 보도로 기자들의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일컬어지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CNN을 세계적인 뉴스 매체로 만든 데는 그의 힘이 가장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81년 CNN에 입사한 그는 1991년 걸프전
때 공습이 진행중인 바그다드의 모습을 현지에서 생중계로 보도했다. 또 사담 후세인을 단독 인터뷰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97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의 인터뷰를 성공시켰다.
하지만 피터 아넷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신경가스 사용 여부에 대한 보도로 경영진과 마찰을 빚은 뒤 1999년 4월에 CNN을 떠났다.
그는 케스트 뉴스 기자로 2001년 아프간 전쟁을 취재한 뒤 NBC에 합류했으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후 이라크 TV와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의 초기 전쟁전략은 실패했다”고 말했다가 해고당했다. 그는 현재 영국의 데일리 미러지에 자유기고를 하고 있다
타협은 없다
아넷의 아포리즘과도 같은 좌우명은 “기자의 가장 큰 무기는 팩트(사실)”라는 말이다. 그는 사실을 두고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독자 혹은 시청자에게 전달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미움을 샀고 이력에서 보이듯 CNN과 NBC로부터 쫓겨났다.
그는 미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미국 내 언론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행위를 “대중의 알 권리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하면서 “사람들은 미국의 의견과 더불어 반대편의 입장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대 언론 통제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서 미국의
언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전하는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 그는 이라크 전쟁 당시 활약한 알 자지라를 예로 들었다. 이 방송은
중동을 넘어 세계 사람들에게 전쟁의 이면과 진실을 보여 주었다는 평을 듣는다.
9.11의
쇼크
“주류 언론들은 자발적으로 ‘영웅 만들기’를 통해 부시 정부에 협력하고 전쟁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다. 이라크 사태가 전쟁까지 가게 된 것은
부시정권이 선택한 것이지만 미국의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한 탓도 있다.”
아넷은 미국의 주류 언론 또한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 하고 정부와 손을 잡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언론이 과거로 회귀한 듯 느껴지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언론이 표현의 자유보다 국가안보를 더 중요시하고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그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검열 아래 모든 보도가 통제됐다고 한다. 기자들은 군복을 착용하고 연합군에 유리한 기사만 내보냈다는
것.
베트남전도 마찬가지. 그가 직접 베트남전을 취재할 때, 공산당 관련 기사는 검열을 거쳐야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미국 남부 지역의 시민권 운동과 인종문제, 쿠바 문제 등을 젊은 기자들이 눈에 보이는 사실대로 기사를 쓰고 정부를 비판하면서
정부와 언론이 상생의 관계로 나가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워터게이트’ 사건은 언론이 정부의 비판자로서 성장하는 아주 훌륭한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국 언론이 세계 언론의 본보기가 아니라고 그는 개탄한다. 미국 언론의 변화는 9.11 뉴욕테러의 영향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테러의 공포를 경험했고, 정부의 대 테러 전쟁에 동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실패”
“테러는 증오한다. 하지만 아랍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정책을 반대한다. 이라크 내 반미 감정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미국병사는 하루에 한
명 꼴로 사망하고 있다. 이런 것들로 미뤄 미국이 이라크에서 승리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피터 아넷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을 실패했다고 규정한다. 또한 그는 애초에 명분도 없는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미국 정부가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전쟁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의 제거, 알 카에다 분쇄 등을 이유로 내걸고 주류 언론들도 이를 거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게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목숨을 내놓고 전쟁터를 좇아 다니고 있는 아넷은 병역기피자였다. 그가 21살에 고국인 뉴질랜드를
떠난 것은 순전히 군대에 가기 싫어서였다. 만약 그가 군대에 갔더라면 한국전에 파병될 예정이었다.
그는 호주를 거쳐 태국으로 들어갔다가 AP 통신의 파트타임 기자로 일하게 됐고, 1966년 라오스 분쟁 사태를 취재하면서 종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내가 하는 일이 목숨과도 바꿀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 그는 진정한 종군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전쟁의 진실을 보도할
수 있을 정도의 신념이 필요하다고 그를 추앙하는 종군기자와 종군기자 희망자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한국 방문을 마치고 이라크로 향했다. 13년 동안 이라크를 드나들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이라크와 후세인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