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재단 교사 부당 대우 위험수위
불법 감시·청 프로그램으로 사생활까지 침해
"교사들 불쾌하지만 참아야지 별 수 없다"
경기도의
한 사립 중·고등학교 재단 측이 교사들의 개인 PC에 감시가 가능한 프로그램(넷오피스쿨)을 설치해 PC사용 내역을 감시·감청하고, 그 내용을
근거로 징계를 내린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현재 학교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교사 중 프로그램을 삭제했다는 이유로 파면 당한 최모 교사가 “징계가 부당하다”며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해 진행중이며, 다른 두 여교사들은 별다른 대응 없이 참아오다 재심 기간이 지나 손을 놓은 상태다.
재단 측은 이번 사건이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불거지자 양측 학교의 관리자를 징계하고, 문제의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 했다.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교사 감시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 고등학교 무용교사인 한모 씨가 어버이날 선물로 부모님 속옷 구입을 위해 인터넷쇼핑몰을 이용하면서부터다. 재단 측은
이 교사에게 “교사의 성실의무를 위반하고, 동료교사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며 3개월간 월급의 1/3을 감봉조치 했다.
이 사건 직후 5월17일 재단 이사장은 중·고등학교 교장에게 문제의 프로그램을 교사들의 PC에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이유는 학교 물품관리와
교사들의 사적인 PC사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교사들은 “프로그램이 설치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다”고 주장한다. 최모 교사는 “조회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프로그램을 설치하겠다’고 만 했을 뿐 구체적인 설명이나, 동의는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교사들의 개인 PC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전체 조회시간에 ‘공지 사항’ 전달만으로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넷오피스쿨’은 본래 전산실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실시간 원격강의를 하기 위해 개발된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교사가 학생들을 동시에 지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메인 관리자는 각각의 PC에 대해 모니터링과 제어가 가능하며, 교육목적에 따라 교사와 학생간의
음성과 문자 통신을 통한 개별·그룹지도가 가능하다. 이 학교의 경우 교육 프로그램을 학생 교육이 아닌 교사 감시용 프로그램으로 사용한 것이다.
감시 프로그램은 곧 성과를 올렸다. 6월 초순 고등학교 오모 교사가 쉬는 시간에 남편과 메신저로 채팅한 것이 학교측의 감시망에 잡힌 것.
곧바로 교감은 오모 교사를 불러 채팅내용을 출력해 보여주며, 마치 현행범을 잡은 듯 사유서를 요구 했다. 이후 학교측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오모 교사가 남편과 나눈 메신저 내용을 징계위원들에게 공개하고 ‘견책’ 징계를 내렸다.
양측의 깊어진 골이 터진 것은 중학교 최모 교사가 ‘넷오피스쿨’이 감시 프로그램임을 알고 이를 삭제하면서부터다. 학교측은 곧 징계위원회를
열어 프로그램을 임의로 삭제한 최 교사에게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민주노총
학교측 관계자 고발
최 교사는 학교측의 부당 징계에 맞서 교육청의 교원징계재심위원횡에 재심의를 청구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에 자문을
구했다.
현재 최 교사에 대한 재심의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순경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사건의 내용을 검토한 민주노총은 지난 9월25일 프로그램
설치 당시 이 학교 교장과 재단 관계자 5명을 통신비밀보호법과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개인정보보호 등을 위한 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민노총은 고발장에서 “피고발인들은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학교에 교사들의 동의없이 불법적으로 감청설비를 설치하고, 허락된 권한을 넘어 교사들의
정보통신망을 침해하여 전자통신의 송·수신내용을 불법적으로 감청하고, 이를 통해 취득한 자료를 이용해서 교사들을 징계하는 등 위법행위를 저질러
왔다”고 주장했다.
고발인인 민주노총 최세진 정보통신부장은 “학생 지도를 위해 만들어진 교육용 프로그램을 다른 목적인 교사 감시용으로 사용한 것은 불법 감청에
해당한다”며, “현행 통신비밀법에 따르면 감청실비를 소지 또는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므로, 인가를 받지 않고
설치 및 사용한 것은 명백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17조 제4호에 따르면, 불법 감청설비를 소지·사용했을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전기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7항에는 감청을 ‘전기통신에 있어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전자장치, 기계장치 등을 사용해 통신의 음향, 문언,
부호, 영상을 청취·공득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 법률
제4조는 관련 법률의 규정에 의하지 않은 불법 감청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금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고
규정한다.
학교측에서는 교육용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사용하는 전산실에는 이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학교측이 설치한 프로그램이 비록 감청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만, 실제 감청에 사용될 수 있는 설비”라고 주장했다.
쏟아지는 재단비리
학교 재단 측은 문제가 불거지자 중학교 교장과 고등학교 교감에게 징계를 내리고, 교사들의 PC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일괄 삭제, 파면된 최모
교사를 복직 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그동안 재단 측의 불합리한 대우를 참아왔던 교사들이 교육정상화를 위한 교사모임을
만들어 재단 측에 학교운영 개선과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같은 시기 교육청 홈페이지에는 익명으로 이 학교 재단과 관련된 비리내용이 공개돼 재단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재단 측이 학교명의 토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부당거래를 하고 차익금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대책위원회 최영주 씨는 “대입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문제가 커지면 학생들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현 상태에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며 “하지만 재단과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서 책임여부를 가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이후 새로 부임한 중학교 교장은 “현재 학교 운영상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학생들을 위해 빠른 시일내에 정상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