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집회 위장신고 앞장
중복집회 허용, 위장집회 과태료 부과 등 법개정 필요
경찰이 ‘싹쓸이 위장집회’를 신고하도록 일선 구의원에게 전화하고 대리로 작성까지
해줘 물의를 빚고 있다. 경찰은 10월30일 헌법재판소가 ‘외국공관 100m 이내 집회금지’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집회 빈발을 우려해
재빠르게 손을 썼다.
종로구의원 명의 빌려 집회신고
지난달 30일 종로구의회 김모 의원은 종로경찰서 배모 경장으로부터 ‘청와대 인근 감사원 주변에 집회신고를 내달라’는 전화부탁을 받았다.
배 경장은 바빠서 움직일 수 없다는 김 의원의 말에 ‘대신 신고서를 작성해주겠다’고 말하고는 김 의원 명의로 신고서를 작성하고 임의로 서명까지
했다.
또 같은 날 미 대사관 주변 집회신고에 대해서도 종로서는 ‘선착순 우선’ 원칙을 지키지 않고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민노당 중구지구당
사무국장이 방문증을 받고 집회신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이 대림산업 관계자를 따로 불러 집회신고를 하도록 도와줬다는 것. 대림산업 관계자는
방문증조차 받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종로서는 이와 관련, 종로구의회 의원에게 집회신고 유도전화를 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대림산업에 특혜를 준 것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종로서측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와 미 대사관 등 공관 주변은 이미 집회신고가 끝난 상태다.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은 지난 10일 청와대 앞까지 도보행진을 하기 위해 집회신고를 냈지만 집회가 중복된다며 거절당했다.
주한 미8군과 미 대사관의 경비용역을 맡고 있는 신천개발이 미리 내년 말까지 집회신고를 마친 것.
참여연대와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서도 경찰이 미리 전화를 해서 신천개발에 집회신고를 하도록 유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참여연대는 12일 성명을 발표, “집회·시위의 자유를 공권력이 앞장서서 방해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해당 경찰관과 종로서장
사퇴를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베트남대사관 앞 감사원 부근(삼청동 번영회), 일본대사관 주변(삼성수송타워), 미 대사관 앞 행진(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운동본부)
등도 경찰이 요청한 것으로 의혹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같은 날 “집회를 못 하게 방해하고 수도 없이 폭력 진압해왔던 종로서가 벌인 일에 분노가 치민다”면서 “과연 이런 일이 종로서에서만
일어난 것인지 낱낱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이 같은 발빠른(?) 행보는 ‘경합집회 금지’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현행 집시법 제8조는 “시간과 장소가 경합되는 2개 이상의
집회 신고가 있고,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뒤에 접수된 집회 또는 시위의 금지를 통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서로 대립되는 집회가 발생, 충돌할 것을 우려한 조항이다.
이러한 조항이 오히려 자유로운 집회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중복집회가 가능하도록 하거나, 위장집회에 대해 과태료를 물리는 등 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