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책, 실화. 올 가을 극장가 트렌드는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눈물과 감동을 자아내는 따뜻한 가족영화와 베스트셀러 원작의 영화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이야기가 쌀쌀한 가을, 영화팬들을 유혹한다.
눈물 젖은 가족 드라마 영원한 추석 단골
9월 극장가 라인업은 가족 영화가 대세다. 올해 가을 극장가를 찾을 영화들을 살펴보면 마드리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레스토랑 스타쉐프 경영자인 막시 앞에 10년 만에 나타난 아이들과의 헤프닝을 그린 ‘산타렐라 패밀리’,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위해 맞춤형 아이로 태어난 동생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그린 ‘마이 시스터즈 키퍼’,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이별을 그린 ‘애자’, 자녀 사교육 열풍과 기러기 아빠 문제 황혼 이혼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날아라 펭귄’,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그린 ‘내 사랑 내 곁에’ 등 가족을 소재로 눈물과 감동이라는 코드로 국내 관객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가족영화는 추석을 전 후로 가을에 해마다 강세를 띄는 장르다. ‘가문의 위기’ 시리즈는 추석 시즌에 늘 개봉했다.
2004년 9월 제목을 작정하고 ‘가족’으로 걸고 나왔던 수애와 주현 주연의 가족 드라마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박의 주인공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족물의 흥행이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트렌드에 딱 들어맞는 기획이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흥행 안전핀 베스트셀러
이들 가족 드라마 중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화제의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기도 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인기 작가 조디 피콜트의 원작소설은 출간하자마자 아마존에 1000개가 넘는 독자리뷰가 달리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평단의 호평과 독자들의 찬사 속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알렉스 어워드 상을 수상하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맞춤아기’라는 파격적인 소재는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졌고 가족 구성원 각각이 화자가 된 독특한 구성, 특별한 상황을 통해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탄탄한 스토리는 다양한 연령층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의 영화화 소식에 관객들의 기대는 고조됐고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결말은 소설을 읽었거나 또한 읽지 않은 관객들 모두에게 궁금증과 흥미를 더하고 있다.
올 가을에는 이처럼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영화화가 잇달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10월22일 개봉하는 ‘더 로드’는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코맥 매카시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2019년 지구 대재앙 이후의 인류의 충격적인 모습을 다룬 이 작품 역시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바 있다. 영화는 비고 모텐슨, 샤를리즈 테론, 가이 피어스 등의 배우들이 출연해 기대를 높이고 있다.
10월 개봉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역시 2003년 출간된 이래 뉴욕타임스,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의 호평과 세계적인 판매고를 기록한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채 시간을 초월해 여행을 하는 인물과 그를 평생 동안 사랑하는 여인의 시공간을 초월한 판타지 러브스토리로 에릭 바나와 레이첼 맥아덤스가 주연을 맡아 주목 받고 있다.
거듭되는 리바이벌은 반칙
이처럼 원작의 힘만으로도 이미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들 영화들은 텍스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시각적 즐거움을 더해 소설을 뛰어넘는 인기를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하면서 서점가에는 원작 소설들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현상도 눈여겨 볼만하다. 탄탄한 원작의 힘으로 흥미롭게 짜여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되고, 영상이 보여주지 못하는 행간에 대한 궁금함이 다시 원작을 찾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인기가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고 또 영화의 인기가 소설 판매에 재영향을 미치는 이 같은 원리를 잘 이용하면 안전하게 흥행에 안착할 수 있다. 내수 시장이 작은 국내 문화계에서 원작의 유혹은 그래서 강렬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원작에 의존하는 형태의 제작방식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거듭되는 리바이벌은 일종의 반칙이라는 것. 탄탄한 창의력을 바탕으로하는 체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코드의 재발견과 창조의 고통 없이 손쉽게 원작을 되풀이해 연주하는 것은 문화적 토양을 오히려 팍팍하게 만든다는 비판과 우려도 많다.
스크린, 실화와 연애 중
실화 소재 영화의 인기 또한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7월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해 최고의 디자이너 샤넬의 브랜드 탄생기를 담은 ‘코코 사넬’까지 이어진 실화의 인기는 가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장근석, 정진영 주연의 미스터리현장살인극 ‘이태원 살인사건’이 가을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발칸반도의 실종 미스터리를 담은 산악액션스릴러 ‘하이레인’ 또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주를 이으며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실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적 힘과 매력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고, 알고 싶어 하는 진실 그리고 객관적인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 극적 재미를 최대치로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추격자’를 시작으로 국내 극장가에 불고 있는 실화열풍은 올해 ‘국가대표’, ‘킹콩을 들다’, ‘퍼블릭 에너미’, ‘코코 샤넬’, ‘이태원 살인사건’ ‘하이레인’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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