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글로벌 패션산업 연구를 통해 축적한 제 노하우로 한국 패션기업의 세계시장 성공적 진출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영화, 드라마, 가요 등에서 한류가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요즘, 패션도 하루빨리 세계무대를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아시안 최초로 국제의류학회(ITAA) 회장직을 최근까지 역임한 진병호(57. 미국명 Byoungho Ellie Jin) 美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석좌교수의 일성이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그는, 세계 의류 관련 학회에서 ‘패션산업 글로벌 전략’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는 국내 박사 학위로 미국 대학 교수가 됐다. 연세대학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쳤다. ‘패션기업의 글로벌 전략’ 관련 논문으로 스카웃 대상 교수가 됐다. 오클라호마주립대 교수(2001~2009)를 거쳐 노스캐롤라이나대 석좌교수(Univ. of North Carolina at Greensboro. 2009-2018),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석좌교수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2018- 현재)로 글로벌 패션 전략을 가르치고 연구해왔다.
현재는 국제의류학회 (ITAA: International Textile and Apparel Association) 고문으로 회장과 학회원들에게 패션산업 관련 자문역을 맡고 있다. 회장을 지낸 지난해에는 전세계 섬유·의류·패션 분야 교수 2500여명이 회원을 리드하며 다채로운 성과를 거뒀다.
학회 내에서 거의 30년만에 ‘전략적 계획’을 주도해 학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와 기획 기반을 다졌는가 하면, (주)영원무역과 연계해서 ‘영원’ 학술상(Youngone Best Paper Award)을 제정해 우수논문 배출 분위기를 조성했다. 패션산업과 연구자간의 거리감을 좁혀 협업의 기틀도 마련했고, 또 ITAA학회 활동을 유투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극 알려 회원들의 참여와 산학 협력이 원활하도록 주도했다.
중국,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신흥 아시아 시장과 이탈리아에서 연구년 동안 지내면서 글로벌 시장을 직접 경험하고 연구했다. 또 미국에서 22년간 교수로 연구를 병행했는가 하면, 동남아 각국과 유럽, 미국 등지 패션산업 현장을 다니며 글로벌 전략을 들여다보았다. 덕분에 여러 해외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 컨설팅을 하고 있다.
진 교수는 기자를 처음 만난 2013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패션산업이 하루빨리 글로벌 마켓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어떤 역할을 할수 있는지 다시 물었다.
“최근 미국의 분위기로 볼 때 기존 패션 비즈니스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이 힘들다”는 진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는 온쇼링(onshoring), 개인화(personalization),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공급망 투명성 (supply chain transparency) 등이 핫이슈인 만큼 이런 부분에서 실질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국내 생산인 온쇼링(onshoring)을 통해 비용절감, 국제 표준 준수 용이, 더 간소화된 공급망, 가까운 이웃기업끼리 유대감 강화 등을 획득할수 있다. 그런가하면 오프라인 쇼핑과 함께 온라인 쇼핑도 많아진 만큼, ‘공급망’과 ‘경영 투명성’, ‘개인 맞춤’, AI 활용 디자인과 테크놀로지, 빅데이터 적극 활용해 패러다임 시프트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한국 패션시장은 세련미와 다양성, 선진국 느낌을 가져가고 있다”는 진교수는 “한국 시장의 장점이 많지만, 시장이 너무 좁아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생존이 힘들다”면서 “인터넷쇼핑이 활성화된 이후, 제품의 가성비, 경쟁력이 다 드러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패션브랜드를 딱히 만나볼 수 없는데 지금이라도 한국이 노력하지 않으면 자칫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미국시장에서 20대들에게 돌풍을 일으키는 중국 브랜드가 있다. 가격 대비 품질, 디자인이 좋고 중국에서 제조해서 미국 소비자의 집까지 빠르게 배달된다. 영국의 한 브랜드도 인터넷 구매 후 미국 소비자에게 배달해주는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유명한 일본 유니클로(Uniqlo)와 무지 (Muji)도 미국에서 잘나간다. 홍콩의 지오다노도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우리도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내년 출판을 목표로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 책을 집필중인 진 교수는 “해외 진출시 어떤 전략을 쓰는가는 비즈니스 승패에 중요한 문제”라면서 “해외 진출시 각국의 비즈니스 환경,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뿐 아니라, 매니지먼트 스타일, 협상 스타일 등도 중요하다. 또한 어느정도까지 상품, 가격 등을 현지화시킬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진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현재 한국 시장은 어떤 단계인가.
=미국 시장이나 한국 시장이나 지금 쇠퇴기다. 의류 산업의 발달 단계에서 쇠퇴기의 특징은 고용 감소와 공장 폐쇄, 해외 소싱 증가, 무역 적자 등이다. 쇠퇴기의 해결책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이다. 한국 패션산업도 자국내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특히 한국은 해외 진출과 시스템화, 신소재 개발로 부가가치를 일으켜야 한다.
Q. 세계시장 진출시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면.
=진출할 나라의 패션시장뿐 아니라 소비자 행동 특징, 성향, 문화, 국민 정서 등에 대한 사전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옷은 사이즈가 55, 66, 77, 88 등 몇 개 밖에 없다. 하지만 해외에 진출하려면 다양한 사이즈를 갖추고, 키와 볼륨을 배려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미국에는 고객의 신체를 스캐닝하는 첨단 기계도 나와있다.
해외에 진출하려는 SPA 브랜드일수록 사이즈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한국 SPA들은 브랜딩과 서플라이 체인 매니지먼트(SCM)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Q. 한국 패션 브랜드의 세계 시장 진출이 현재 적기라고 보는지?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다. 드라마, 영화, 가요, 음식 등 한류가 뜨고 있고, 동아시아권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다. 중국브랜드가 더 크기 전에 우리나라가 뭔가 해야 한다. 시기적으로도 우리나라 영화나 가요가 세계무대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며 한국 이미지도 많이 좋지 않은가. 또 우리만큼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민족도 드물다. 게다가 중소기업이 잘 할 수 있는 산업이 패션이다. 더구나 한국은 IT산업이 우수하지 않나.서플라이 체인 단계별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고, 정보가 공유되면서 업체들이 소비자의 니즈를 ‘반응 생산’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Q. 한국만의 강점-약점이 뭐라고 보나.
A. 한국민은 자연스럽게 멋을 낼 줄 알고, 옷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감각도 좋고 기술력도 뛰어나다. 컬러감, 패션 센스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국민성도 부지런하고 디자인도 좋다. 생산을 직접 하기에는 인건비가 높은 게 단점이지만, 그 외는 인프라가 좋고 잘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췄다. 세계 패션의 유행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여기에 딱 적합한 민족성이다. 빨리빨리 일을 진행시키는 에너지가 있어 점점 짧아지는 패션 사이클에서 생존하기 유리하다. 인터넷 등 산업 인프라도 잘되어있지 않나. 빅데이터, AI시스템, 메타버스 등을 활용하면 좋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이 자국 주력 산업으로 키우듯 한국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패션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
Q.후발 주자로 뛰어들어도 글로벌 경쟁이 가능하다고 보나.
A.가능하다. 단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글로벌 패션 전략 연구가를 활용하면 도움받을 수 있다. 패션 산업은 이미지 산업이다. 이전에는 한국 브랜드에 대한 세계인들의 애호도가 낮았지만, 지금은 K-영화, K-팝, K-드라마 등 뜨거운 한류붐 속에 한국 브랜드 애호도가 높아졌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 TV는 삼성 제품, 냉장고와 세탁기는 LG 제품을 쓰는 이가 많다. 자동차로 현대 제네시스도 인기 많다. 이런 분위기를 타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