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0월로 예정된 담뱃값 인상이 임박해지면서 ‘찬반’에서 시작된 논란이 ‘가격인상의 목적’을 두고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5월 김화중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금연정책을 위해 담뱃값을 3,000원 이상 올리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계속돼 왔다. 정부는 담뱃값을 오는 10월 500원, 내년 7월 500원씩 인상하기로 했다. 올해 물가상황을 고려해 인상시기를 11월로 늦추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인상폭과 시기를 두고 검토와 재검토를 거치면서 계속 늦어지는 사이, 흡연자들의 반란은 계속되고 담배 사재기 등의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 크게 늘어
정부는 흡연율을 줄이고, 세수증대로 보건사업을 확충하겠다는 취지에서 담뱃값 인상 정책을 폈다. 효과적인 금연정책으로는 담뱃값을 올리는 가격정책과 흡연에 대한 규제를 까다롭게 하는 비가격정책이 있다. 세계은행은 가격정책이 비가격정책에 비해 같은 비용을 투입하고라도 7.8배에서 155.8배의 금연효과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저비용으로 흡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담뱃값 인상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답뱃값을 10% 인상할때 담배소비가 3~4%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온 사실로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이 국민건강을 위한 금연정책이라는 데 대다수 흡연자들은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파격적인 담뱃값 인상에 정부가 금연정책을 빌미로 재정을 확대하려는 속셈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2002년 갑당 150원 인상으로 건강보험 재정 위기 해소로 주로 사용됐다는 점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복지부는 인상분의 50%는 국민건강증진에, 50%는 지방균형발전에 사용할 계획이며, 금연지원, 관리, 공공보건의료 인프라 확충, 건강보험 지원 등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세금 이외 거둬들이는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 규모가 크게 늘어나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기획예산처가 내놓은 2003년 부담금 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부담금 규모는 1년 전에 비해 18.4%나 늘어난 8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최근 7년간 연평균 증가율(8.4%)의 두배를 웃도는 수치다. 또 같은 기간 연평균 국내총생산 증가율(6.6%)보다 3배 가량 높다. 준조세 중에서도 보건·의료 분야 부담금이 7,020억원으로 전년 대비 37.4%나 늘었다. 답뱃값에 붙는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이 갑당 2원에서 150원으로 크게 늘어난 탓이다. 부담금 부과대상은 담배사업자지만 인상분 대부분이 담뱃값에 반영되기 때문에 흡연자들의 징수비용이 그만큼 는 것이다. 부담금은 조세에 비해 저항이 크지 않고 징수나 집행과정의 어려움이 적다는 점에서 손쉬운 재원조달 수단이 돼 왔다. 부담금 지출용도가 명확하지 않고 기금운용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경수 담배소비자보호협회장은 “보건당국이 겉으로는 국민 건강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보건의료 재정확충을 위해 담뱃값을 올리려 한다”면서 “담뱃값 인상은 담배 사재기를 부추길 수 있어 판매율 감소를 통해 흡연율 하락을 기대하는 보건당국의 의도와는 배치되는 역효과가 우려된다”고 말한다. 재정경제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담배 출하량은 486억6,000만개비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5억8,000만개비에 비해 30%나 증가했고 반기별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6월 한달에만 116억5,000만개비나 출하돼 사상 처음으로 월 출하량이 110억 개비를 넘어섰다.
국민건강부담금 지출용도 불투명
담뱃값 인상으로 얻어진 추가재정을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고 있지만, 사실상 보건 부문에 투자해 금연사업과 보건사업을 병행하지 않고 있다. 2003년 기금의 95%가 지역건강보험적자보전에 사용됐고, 인상분으로 인한 신규기금조성액 중 34%만이 금연사업에 배정됐다. 때문에 건강부담금의 인상이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명분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복지부가 금연유도의 명분을 내세워 현재 갑당 150원이 부과되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2004년 500원, 2005년 500원씩 인상, 담뱃값을 1,0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건강부담금 폐지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맹측은 또, 건강부담금의 인상으로 일반예산의 2~3%에 달하는 건강기금이 그 운영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는 특별기금의 형태로 보건복지부의 딴주머니가 된다면, 이는 “건전재정의 원칙을 위배하는 탈법적인 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때문에 “부담자와 부담금 지출용도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고 기금운용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건강기금의 무리한 인상은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서민경제에 주름살을 더할 뿐”이라면서 “담뱃값이 인상돼야 한다면 조세형태로 징수되어 예산의 운용과 집행에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흡연률 감소 효과 기대 어려워
담뱃값 인상으로 흠연률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데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국담배공사는 담뱃값 인상을 통한 금연정책은 일시적 감소효과에 그치는 ‘요요현상’이 적용된다고 밝힌 바 있다. 올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담배 판매량이 22억9,600만갑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1억9,200만갑에 비해 4.7%나 증가했다. 정경수 담배소비자보호협회장은 “94년 이후 담뱃값이 매년 올랐지만 흡연률 감소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서 “택시비 인상과 같이 인상 당시에는 끊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원상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담뱃값은 적정한 수준일까. 일반적으로 경쟁국의 2분의 1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의 물가수준과 세율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이다. 9,250원인 노르웨이에 비하면 2~3배 싸지만, 980원인 브라질에 비하면 2~3배 비싸다. 또 일본은 2,200~2,500원으로 국민총생산(GNP )이 2.5배 높은 점을 감안하면 비싼 편이다. 담뱃세 또한 선진국과 비교했을때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이다.
한 네티즌은 “선진국이 우리보다 흡연율이 낮은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담배를 ‘건강의 적’으로 규정하고 금연정책을 밀고 나갔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무작정 담뱃값 인상만 고집할 게 아니라 담배 광고 규제부터 시작해서 금연 프로그램의 현대화. 다양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건강을 걱정한다면 좀더 금연정책에 투자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이래도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담뱃세를 인상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비난섞인 말도 덧붙였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