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을 즐기기 딱 좋은 요즘 계절에 주목할만한 두 해외 작가 작품이 개막했다.
쿠바 이민 2세대인 미국 작가 호세 팔라(49)와 멕시코 작가 베이롤 히메네즈(38).
호세팔라 전시는 12월 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갤러리 페레스프로젝트가 마련한 베이롤 히메네즈는 서울 신라호텔 지하 1층에서 12월 2일까지 계속된다.
호세 팔라, 병상에서 처절하게 깨달은 ‘숨쉬기’의 의미 작품에 담아
호세 팔라는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와 캘리그래피 특성을 결합해 추상회화와 대형 벽화, 조각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온 작가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로비에 설치된 대형 벽화 작품으 로도 유명한 호세 팔라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투병했던 체험을 작품에 녹여냈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호세 팔라 개인전 <브리딩 Breathing>은 혼수상태 속에서 경험한 무의식 의 세계와 새롭게 깨달은 ‘숨쉬기’의 의미를 담은 신작들로 구성되 어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3개월간 혼수상태로 투병했던 작가는, 투병 후에도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평소 에는 아무런 자각 없이 자연스럽게 하던 호흡에도 곤란 을 겪었다고 한다.
전시 제목과 같은 ‘브리딩’ 연작은 작가가 회복하던 시기에 작업한 것이다. 혼수상태 속에서 경험한 무의식의 세계를 반 영한 추상회화는 이전 작품들보다 색감의 생동감이 두드러진다.
그림 속 자유분방한 선은 들숨과 날숨의 리듬, 작가의 몸을 여행하 는 공기의 흐름, 그리고 이를 통해 생성되는 에너지 등을 표현한다.
쿠바 이민 2세대로 미국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팔라는 많은 이민자 처럼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작가는 당대 유행하던 힙합 댄스, 언더 그라운드 음악 등의 서브컬처와 해당 활동을 함께 하는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불과 열살때부터 그는 ‘이즈(Ease)’라는 이름으로 마이애미 거리에 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댄서이자 거리의 아티스트로 활 동했던 그는, 선을 자유롭게 화면에 써내려가거나 두껍 게 칠한 물감을 손으로 펴바르는 등의 즉흥적인 신체적 행위를 자연스럽게 작업에 적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에 더불어 학교에서 접한 클리포드 스틸, 사이 톰블 리, 조안 미첼, 잭슨 폴록 등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 가들의 작업에 큰 영향을 받았다.
포스터, 물감, 캘리그라피 등이 겹겹이 쌓여 만 들어낸 레이어로 이루어진 호세 팔라의 작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부터 그에게 영감을 준 각 도시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에는 작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리트 아트의 느낌을 담은 조각 작품도 한국에 첫선을 보인다.
팔라는 신체의 움직임이 남기는 독특한 필획을 통해 도시 생활과 그곳에 사는 사람 들의 삶을 투영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 업은 영국 박물관, 페레즈 미술관, 올브라이 트 녹스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히메네즈, 멕시코의 고대 문명·신화 기반한 독특한 회화 선보여
갤러리 페레스프로젝트가 마련한 베이롤 히메네즈 개인전 <Grass on a Busy Street : 분주한 거리의 들풀>전은멕시코 자연과 역사와 신화, 문화로 가득찼다.
아시아 첫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히메네즈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멕시코 신화와 기원의 주제 및 서사에 대한 탐구를 한층 더 확장한다. 특유의 재치있는 상상력과 퇴폐적인 화면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유화와 아크릴을 기반으로 추상과 구상의 표현을 넘나든다. 생동감 넘치는 구도와 붓놀림, 밝고 경쾌한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원제: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전시에서 ‘The Hero of the Thousand Helmets’(2022)라는 작품은 그 영향을 잘 보여준다.
작품 속 영웅의 모습은 신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전사 또는 모험가들이 주로 남성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을 꼬집고 무너뜨린다. 화면에는 인간, 식물, 그리고 동물과도 같지만 전혀 다른, 모호한 합성 생명체들만이 존재한다. 그가 창조해내는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은 ‘The Spirit of the Corn Seeds’(2022) 속 등장하는 생명을 불어넣는 수확의 신과 같은 수호신으로 묘사된다.
신화가 문명이 미지의 그 어떤 곳, 창조와 죽음의 이상향으로의 길라잡이라면, 히메네즈는 이러한 신화적 상징들에 자신만의 어휘를 조합해낸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예술가로서 외치는 세상에 대한 좌절의 표현이기도 하다. 국내 관객들에게 낯섦과 동시에 신선함을 선사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그의 작업은, 작품이 지닌 지역적 특성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히메네즈는 독일 라이프치히 뒤캉갤러리, 영국 뉴캐슬의 노스쉴드역, 독일 페레스프로젝트 등 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