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고정리에 위치한 (주)백두식품. 바삐 돌아가는 기계소리에 맞춰 작업복을 입고 움직임을 재촉하는 직원들과 한쪽에 마련된 사무실을 보며 보통의 중소기업 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엔 뭔가 다른 특별한 데가 있다. 그 ‘특별함’이란 바로, 이 회사가 탈북자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직원이라고 해 봐야 12명뿐인 조촐한 식구지만, 단 두 명을 빼고는 사장과 공장 직원 모두가 탈북자들이다.
이 회사는 ‘통일을 준비하는 귀순자협회’ 회원 7명이 2000년 공동출자해 설립했다. IMF 이후 탈북자 생활도 어려워지자, 합심해 생활고를 이기기 위함이었다. 북한과 달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남한 사회를 보며 ‘뭐든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고. 출발은 7명이서 정착 지원금과 지인들의 손을 빌려 가며 십시일반으로 거둔 돈으로 어렵게 시작했다.
월급 한푼 없이 느릅냉면과 찐빵 만들기 5년
그래서 시작한 것이 느릅나무를 재료로 한 ‘느릅국수’를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북한에서 느릅나무를 직수입해 처음으로 식품허가를 받아 생산해 냈다. “북한에서는 오래전부터 느릅으로 만든 냉면이나 국수 등이 귀한 음식으로 이용되는데 남한에 와 보니 느릅이 약재로만 쓰이고 있더라구요. 남한엔 아직 없는 음식이니까 만들어 팔면 괜찮겠다 싶었죠.” (창업멤버 윤성철 이사) 실제로 느릅나무로 만든 음식은 북한에서는 귀한 손님을 접대할 때나 명절 등 뜻깊은 날에나 맛볼 수 있는 진귀한 식품으로 특히 느릅냉면과 찐빵은 북한의 명물로도 알려져 있다.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되는 일은 없었다. 윤성철 이사는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사업에 뛰어들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컸죠. 사업자 등록증이 뭔지도 몰랐으니까요”라고 술회한다. 모든 어려움을 겪고 난 지금 사업 5년만에 겨우 터득하고 몸에 좋아 또 한번 반하게 하는 맛이 든단다.
난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북한에서는 귀한 음식인 느릅국수가 남한에서는 시장 흡수력이 거의 없었다. 한계수요에 부딪치면서 느릅냉면과 찐빵, 차 등으로 제품을 다양화했다.
사업 5년동안 고용인을 제외하고 창업멤버 7명의 월급은 한 푼도 없었다. 집세도 못 낼 정도라 공장생활을 해 가며 가까스로 유지만 해 올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 사이 창업멤버 한 명이 이탈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나마 ‘실업극복국민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시민단체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웰빙바람 타고 매출 ‘쑥쑥’
이 회사의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은 6명의 주주 모두가 동등한 위치와 대우,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다. 변영일 사장이 표면상 대표이사로 올라 있을 뿐 똑같이 일하고 수익도 공동 분배한다. 작업도 누가 공장직원이고 주주고 따로 없이 똑같이 작업복을 입고 같이 일한다.
윤 이사는 “어떤 문제든 6명의 주주 모두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책임을 갖다 보니 간혹 의견충돌이 있을 때도 있지만 서로 배려하면서 같이 생활하는 것에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수익이 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달 전이다. 최근 웰빙문화가 확산되면서 건강식품인 느릅냉면과 찐빵 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 동의보감에서도 느릅나무는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고 부드러워 이뇨작용을 돕고 장위의 사열을 없애 장염에 효과적이고 부기를 가라앉힌다고 나와 있다.느릅나무의 약효와 함께 맛이 단백하고 쫄깃하며 소화가 잘 되는 느릅냉면은 누구나 즐겨찾는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다. 느릅나무로 만들어 은은한 맛이 있고 육수에 일절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뒷맛이 깔끔한 게 특징이다. 또한 부드럽고 조리가 간편한 느릅찐빵도 간식용, 선물용으로 많이 찾는다.
윤 이사는 “처음엔 탈북자들이 만든 것이라니까 불쌍해서 사 주는 차원이었는데 요즘엔 웰빙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탈북자 정착을 돕는 의미에서 좋고 수요자 본인은 몸에 좋은 건강식을 먹기 때문에 입소문이 전해져 지금은 폭발적으로 주문이 밀려 들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일체의 생산설비를 갖춘 공장을 확보하고 업소용으로 생산, 12개 대리점에 공급하고 있다. 한달 매출만 1억에 달해 올해 목표 20억원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환원하며 탈북자 생활 돕고파
이들의 ‘작은’ 성공은 탈북자 전체의 귀감이 된다. 90년대 후반 이후 급증한 탈북자수가 7,000여명에 달하면서 탈북자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 이들에 대한 정부지원도 늘고 있지만, 최근 탈북자 브로커 문제와 정착 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방황을 하거나 범죄자로 전락하는 등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윤 이사는 “탈북자들이 남한 생활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데 정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탈북자 스스로가 선택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책적으로 지원될 때 탈북자 정착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사업의 성공이 아니다. 탈북자의 모범이 되어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며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줌으로써 안정된 생활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한달에 한 번 노숙자와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통일을 준비하는 귀순자협회 허광일 회장은 “귀순자들이 자본사회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정부에만 의존하려 해서는 이 사회의 성공적인 정착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 “이런 가운데 백두식품이 남한 사회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귀순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고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