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정리해고, 10년만의 경찰버스 전소, 3번의 크레인 점거농성과 최초의 전기총 발사진압, 박상욱 동부협 의장, 차행태 부지회장, 등 10 명의 노조관계자 구속, 72억의 재산피해. 지난해 11월 부터 불타기 시작한 현대하이스코 노사 갈등이 만들어낸 ‘화려한’ 지표들이다.
지난 13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와 사측이 극적 타결을 만들어냈지만 그 간의 갈등이 서로에게 준 피해는 막심했다. 지난 1년간 하이스코에는 무슨일이 있었나? 왜 노동자들은 세번에 걸쳐 크레인 점거를 해야했나?
1라운드, 공장 크레인 점거와 ‘확약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7년 동안 3조 3교대로 일하면서 한 주에 60~70시간을 일하면서 기본급으로 75만원을 받았다. 각종 복지 조건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언제 해고될지 몰라 전전긍긍한 삶. 이것이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이유였다. 노조 결성을 앞뒤로 한 6~7월, 현대하이스코와 각 하청업체 사장단들은 단 한 번도 비정규직 노조가 요구하는 교섭에 응하지 않은 채 태광계전, 금산, 우성산업, 한일기업 등 4개 하청기업을 차례로 폐업시키고 120여명의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았다. 회사 쪽은 이를 ‘경영상의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노조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위장폐업”이라고 맞섰다.
그후 노동자들과 회사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됐다.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에 원청이 응할 이유는 없다”는 논리로 현대하이스코 본사가 대화의 창을 닫았기 때문이다. 순천시의회와 순천시장이 중재에 나섰지만 현대하이스코는 꼼짝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130일 가까이 계속됐으며, 결국 120명의 해고자 중 61명이 10월24일 새벽 1시 공장 크레인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1차 크레인 점거 농성이다. 그리고 10월25일 순천지역 노동자 5천여 명은 하이스코 공장 앞에 모여 전경버스 3대를 전소시키고 공장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후 순천시의회, 순천시장, 국가인권위,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 단병호·심상정·이영순 의원,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협상은 쉽지 않았다. 급기야 청와대에서 중재에 나섰지만 묵살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음식물과 식수 반입을 차단한 채 “교섭은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현대하이스코와 시너 20여 병을 비축하고 “결사항전”을 되뇌었던 농성자들의 태도는 11일 동안 평행선을 달렸다.
휴지조각이 된 ‘확약서’ 그리고 2차 점거
이같은 상황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 11월3일 새벽 2시. 비정규직 노조와 현대하이스코는 확약서라는 이름의 합의를 극적으로 도출해냈다. 확약서는 ‘사내 하청업체는 폐업 등으로 인한 실직자들이 우선 취업이 될 수 있도록 한다’와 ‘4조3교대제 도입, 노조활동 보장’ 등을 골자로 했다.
당시 이를 두고 노동계는 “원청 사용자가 처음으로 하청 노동자와 교섭을 하고 합의를 본 사건”으로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았다. 복직날짜도 명시되어 있지 않을 뿐더라 확약서 내용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노총 양태조 정책국장은 “협약서 내용을 보면 기한도 명시돼 있지 않고 애매한 표현으로 채워진 것을 볼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이 협약서를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사자인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조 안영오 총무부장은 “확약서를 보면 복직에 대한 날짜 기한도 없다. 게다가 ‘구속자를 최소화하도록 건의한다’가 아니라 구속자가 나오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조합원들이 많이 아쉬워했다”고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사측은 노조, 지역사회, 정부 등이 참여하는 형태의 다자간 협상을 선호한다. 첫 확약서도 이렇게 만들어 졌다. 그 이유는 다자간 협상에서 합의한 조항들은 ‘약속’일 뿐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하이스코와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낸 확약서 자체에는 이처럼 헛점이 많았지만 원청 사용자가 직접 하청노동자와의 교섭에 임했다는 것은 큰 진전으로 평가됐다.
곧, 확약서는 곧 휴지조각이 됐다. 노조원에게 돌아온 것은 복직 명령서가 아닌 추가 폐업과 72억4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서였다. 노조는 4월19일 새벽, “확약서 이행”을 요구하며 다시 크레인위로 올라갔다. 지키지 않아도 돼는 약속을 할 때부터 이같은 진통은 예상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노조는 서울로 올라와 삼보일배도 진행하는 등 다시 거리로 나섰으며 정부와 사측은 강제 진압으로 대응했다. 크레인 점거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대테러 작전용 ‘1만볼트 전자충격총’을 사용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3차 점거와 합의서 조인 이후 하이스코 비정규직 지회는 3차 크레인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현대의 심장이라고 할수 있는 양제동 현대 신축공사 현장에 있는 70m 상공의 타워크레인이었다. 이에 대해 노조관계자는 “원청인 현대측에 책임있는 대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하이스코 문제는 노동계 현안 1순위가 됐다. 지난 5월1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세계노동절 대회에서도 농성중인 노동자의 전화연설이 첫순서로 배치됐다.
3차농성은 13일 동안 이어졌으며, 5월13일, 노사는 해고자 전원복직과 고소고발 취하,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하, 노조활동 보장을 명시한 합의서에 조인했다. 노조가 사실상 대부분의 요구를 관철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합의서의 의미는 ‘노조가 이겼다’는 승부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 현대 사측이 협의 주체로 직접 나선 점이 지난 확약서 체결과 질적으로 다른 부분. 이에 대해 전국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은 “비정규직 투쟁 관련한 지금까지의 합의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그동안 모른척했던 원청인 현대하이스코가 직접 의사를 표현한 것이 작년 11월 확약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밝혔다.
결국 확약서에서 합의서가 나오기 까지 현대하이스코에서 벌어진 과정은 사측과 비정규직 노조가 교섭을 벌이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와 협상을 하기위해 테이블로 ‘끌려’나오는 선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