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생애 - 권옥연 화백은 1923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어린시절 조부로부터는 서예를,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는 음악을 배우며 성장했다. 아버지와 같은 음악가가 되길 꿈꾸던 소년은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미술을 시작했다. 학생 시절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1941)에서 수상하며 미술계에 존재를 드러냈다. 1942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한국에 돌아온 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한 결과,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 1953년 제5회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문교부 장관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 나갔다. 절제된 청회색의 풍성한 질감 아래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했던 권옥연(1923-2011). 인간의 감정 그 근원적인 부분에 와닿을 듯한 몽환적 상상력의 연금술사 권옥연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현대화랑이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권옥연(1923-2011)의 탄생 10
“용기를 갖고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새로운 것을 해야죠.” 늘 당당함과 자유로움으로 무장한 ‘문제적 작가’ 김구림(87). 그의 패기엔 세월도 비껴나있는 듯하다.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인 김구림은 이승택 이건용 이강소 성능경 등과 함께 참여한 ⟪오직 젊음 :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뉴욕 구겐하임)으로 뉴욕도 매료시켰다. 그에 대한 미술애호가들의 관심도 새롭게 고조되고 있다. 마침 김구림의 70년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김구림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분명한 위치를 점하는 주요 작가이다. MMCA의 《김구림》전에는 김구림의 작업 세계를 조명할 수 있는 230여 점의 작품과 6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가 총망라됐다. 이 회고전은 김구림의 미술가뿐 아니라 총체 예술가로서 미술사적 성과를 재확인하고, 새로운 담론과 연구를 지속 생성하는 자리다. 미술, 연극, 영화, 음악, 무용 등 실험적인 전방위 예술가 2021년 암투병을 밝히며 조용히 칩거하는 듯 했던 김구림은, 이번 회고전을 위해 신작을 준비하는 등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러던 중 쓰러져 중환자실에 실려가며 주윗사람들을 긴장시켰으나 결국
극사실주의 1세대로 불려온 이석주(71) 작가의 준 회고전 성격을 띤 특별기획전이 모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석주는 한국의 극사실회화를 말할 때 가장 첫 번째 언급되는 이름이다. 추상미술이 주류였던 70년대, 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인 벽돌을 그려 한국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작가이다. 1970년대 주태석 고영훈 지석철과 함께 ‘홍대 극사실주의 4인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극사실은 결코 하이퍼리얼리즘으로서의 극사실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대상의 진실성이 드러나는 재현에 가깝다. 그는 더 이상 극사실적인 재현에만 관심있는 작가가 아니다. 이석주는 오히려 “여러 이미지들을 연결해 서사를 만들고 싶은 부분이 더 크다”고 말한다. 사실 작가는 사진보다 더 실제 같은 그림을 섬세하게 그리느라 다작을 못한 게 사실이다. 요즘의 그는 “표현주의적인 부분도 많이 표현하며 페인팅 자체를 즐긴다”고 말한다. 그가 극사실주의 화가로 인식되게 된 것은 70년대말부터 그린 붉은 벽돌담을 소재로 한 <벽>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큰 캔버스에 크게 확대한 듯한 벽돌의 사실적인 정밀 묘사는 극도의 사실적인 그림이어서 강한 인상을 주었
“내 작품속의 고독한 사람들은 내 자신의 반영일 것이다.”(에드워드 호퍼) 고독은 보통 불행한 감정이라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그 고독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단체를 통해 여러 만남을 갖고 분주히 살아간다. 하지만 고독을 피할 수는 없다. 현대인의 고독을 자신의 회화에 주요 주제로 삼은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전시에 올해 상반기 최다 관객이 몰렸다. 지난 4월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인기는 광풍이라 할 정도였다. 미술관에 따르면 4월 20일 전시 개막에 2000명이 다녀갔고 6월까지 매일 티켓이 매진이었다. 7월18일 현재 23만6천명이 관람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의 어떤 점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호퍼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가장 많이 갖춘 뉴욕 휘트니미술관과의 협업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 등 뉴욕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이 아닌 작품은 빠져 호퍼 팬들에게는 다소 섭섭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등 에드워드 호퍼의 주요 작품이 포함된 국내 최초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호퍼 그림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조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세기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53).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까지 불리는 토마스 헤더윅이 6월 29일부터 9월 6일까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전을 연다. 현대 미술 기획 사무소 ‘숨 프로젝트’(대표 이지윤)가 기획한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토마스 헤더윅이 1994년 설립한 헤더윅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디자인 작품 30점이 전시된다. 아울러 매주 금요일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연장 전시된다. 토마스 헤더윅은 영국 디자이너로 런던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회사인 헤더윅 스튜디오의 창업자이다. 1994년 헤더윅 스튜디오 설립 이후 180여명의 건축가, 디자이너, 공예가 및 기술자와 함께 디자인, 건축, 도시계획, 조형물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해가고 있다. “만약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데 당신의 열정과 모든 것을 담아낸다면, 분명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동시대 영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라는
작가는 작품앞에서 몸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보여준다. 두팔을 하늘을 향해 쭉 뻗어서 마치 붓을 양손에 쥔듯이 화폭 위에 양팔을 돌린다. 화면의 뒤에서, 화면을 등지고, 화면을 옆에 놓고 선을 긋는가 하면,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하고 이를 하나둘 푼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거나, 화면을 코앞에 둔 채 양팔을활짝 벌린다. 또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긴다.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 그가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바디 스케이프(Bodyscape)>를 열고 있다. 갤러리현대 신관 지하부터 2층 전시장에는 신작 회화 34점을,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는 아크릴 물 감, 연필,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로 완성한 종이 드로잉 작품과 판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우리 나이로 팔순이나 열혈 청년의 자세로 언론 · 관객들과 소통한다. 아홉 가지 방법으로 그린 ‘바디스케이프’ 신작을 한 자리에서 폭 넓게 볼 수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작 34점과 드로잉은 완판됐다. 몸의 움직임 통해 그림 완성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 신체와 재료, 평면(캔버스)이 자연스럽게 만나 이룬 작품”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