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의 급진적 발전과 함께 그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최근 ‘블록체인’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연관단어는 ‘NFT(대체불가능토큰)’와 ‘메타버스(Metaverse/가상세계)’다. 중견기업은 물론 삼성, LG, SK와 같은 유수의 대기업 및 금융기업에서도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이다. 왜 이렇게 모두가 NFT와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것일까? 최근 초등학생인 조카를 만났는데,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하여 저녁 식사 전까지 집에 들어올 것인지 물었더니 로블록스(메타버스)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라며 집 밖을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일이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메타버스는 이미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며 비대면 실생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더해져 메타버스는 더욱 친근하고 유용한 개념으로 자리 잡아가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는 라이프로깅, 증강현실, 거울세계, 가상세계의 총칭이다. 라이프로깅(Life-Logging)은 개인이 일상의 정보 또는 생각을 기록하고 저장, 공유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현대인에게 어쩌면 삶의 가치는 먹고살기와 몸의 건강함이 다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GDP 숫자가 높아져도 만족을 모르고 먹고살기와 몸의 건강함만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기보다는 남이 조금 더 가진 것에 불행감을 느끼면서, 바로 옆에 있는 남보다 조금 더 가지려고 열심히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복고주의가 유행한다. 드라마나 패션에서 옛날의 풍습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해서 사용하고 있다. 주로 외양을 복고하며 약간 변형해서 유행시키고 있다. 복고주의 때문에 ‘옛날’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부정적으로는 ‘나 때는 말이야’를 ‘라떼는 말야’라고 하며 꼰대 문화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무한 경쟁을 하지 않았다.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주식 투기, 한탕주의 같은 돈 욕심이 지금처럼 난무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돈 말고도 ‘사람’을 가치로 생각했다. 돈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속물이라고 여기며 윤리적으로 낮게 취급했다. ‘돈보다는 사람’이라는 암묵적 도덕이 마음의 심연에 있었다. 지금 시대는 마음조차 돈으로 환산하고 품앗이하듯이 “좋아요” 같은 엄지척의 이모티콘을 가볍게 날린다. 이런
현재의 NFT 시장, 과연 버블일까? 다양한 유 · 무형의 재화에 유일성을 부여하여 ‘디지털자산’화 하는 NFT는 2021년 기준, 전년대비 1,836% 증가한 판매량을 기록하였으며, 달러 거래량 또한 전년대비 21,350% 증가한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미디어는 NFT를 둘러싼 연이은 성공과 호황을 비추며 다양한 산업에 포진해 있는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시장의 성장세를 가속화하는데 일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NFT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일명 ‘버블’로 일축하며 NFT의 가격과 시장 거래량이 사실상 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NFT시장 분석 사이트 ‘NonFungible’에 따르면 최근 NFT 평균 거래가격은 3월 초 기준 2,000달러로 전전월 6,800달러 대비 70% 감소했고, 누적 일일 판매량 역시 3월 초 기준 2600만 달러로 전전월 1억 6천 달러 대비 87.5% 감소한 것으로 보았을 때 NFT버블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NFT가 잠시 커졌다가 사라지는 ‘버블’이라고 판단하기 이전에, 왜 개개인의 관심이 주춤하고 있는건지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NFT 시장은 그간의 폭발적인 성장세 속
평택이 사드배치 논란으로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드 추가배치’라고 쓰면서 다시금 안보 이슈로 대선 민심에 불을 댕겼다. 윤후보는 지난 1월 31일 현안 관련 기자 질의응답 당시 “성주 사드는 수도권 방어를 할 수 없어 평택 미군기지 중심으로 해서” 방어하는 것이라며 평택을 언급했다. 이어, 김재섭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 위원이자 현 도봉갑 당협위원장은 2월 1일 “수도권 국민들이 불편해”한다며 사드 배치 후보지로 평택, 충남 계룡, 논산 등이 가능하다고 하여,“평택 미군기지”를 명확히 거론하였다. 바야흐로 평택시가 ‘수도권 방어를 위한 사드 추가배치’라는 안보 포퓰리즘의 희생양으로,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아름다운 동요, “노을”이 탄생한 풍요로운 들녁을 가진 고장 평택.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던 마을과 드넓은 평야는 전국의 미군부대 이전 및 집중 배치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미군 주둔지가 되었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대신 전투기와 전투 헬기의 묵직한 비행음이 가득 채워진지 이미 오래다. 2006년 미군기지 이전으로 평택은 대추리, 도두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갈등과 아
‘안민가’는 신라 경덕왕 때 충담사가 지은 향가이다. ‘안민가’의 내용은 임금을 아버지, 신하를 사랑하는 어머니, 백성을 어린아이에 비유해서 임금과 신하가 백성을 먹여 살리면 백성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지키면서 편안하게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안민가’는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사랑하는 어머니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각자의 본분을 성실하게 하면 나라가 편안해진다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지금의 현실에 비유한다면 대통령은 아버지, 관료는 사랑하는 어머니, 국민은 자식이다. 아버지인 대통령은 국민을 먹여 살리고, 어머니인 관료는 국민을 사랑하고, 자식인 국민은 나라를 지키면서 안정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1300년 전 신라의 현실이나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나 상황은 비슷하다. 지금도 지도자는 국민을 먹여 살리고 사랑하는 역할을 하는 직위이다. 대통령인 아버지는 국민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국민을 먹여 살리고 구성원 모두가 자기 성공을 하게 돕는다. 관료인 어머니는 사랑으로 국민을 보살피며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존재이다. 지금이 유교 시대가 아니고 자유 민주주의 시대라는 점만 다르지,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을 먹여 살리고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홍익인간사상의 접목으로 ALL-WIN(공영)세계 건설 기계산업전략연구원 오원섭 원장 1.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시대의 현황 4차 산업혁명을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시킨 2016년 1월의 다포스포럼 후 4차 산업혁명은 산업계는 물론이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의 파도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전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로 빨라졌다. 건설산업분야에도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등이 접목되어 획기적인 건설공법과 건설프로세스는 물론 건설산업의 전 Life-Cycle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연결과 지능혁명인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인한 산업계의 메가트렌드에 따르면 산업구조의 변화, 생산방식의 변화, 사회 환경의 변화, 근로 형태의 변화, 소득의 양극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제까지의 1~3차 산업혁명시대에는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을 중시하는 물질중심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시대였다.이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과잉생산에 따른 지구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따라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 지구온난화, 소득양극화의 3대 위협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전염병은 현재 우리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에서 자퇴를 하거나 제적‧퇴학 처분을 받은 청소년, 그리고 진학을 택하지 않은 청소년을 의미한다. 이들의 수는 교육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략 4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에서 주어지는 혜택 및 정보제공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학생증을 발급받을 수 없어 버스 승차나 놀이공원 입장 시 더 많은 요금을 내게 된다. 심지어 공모전 참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도 생긴다. 이처럼 학교 밖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최외각에 놓여있다. 이를 해소하고자 현재 정부 부처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의 ‘꿈드림’과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친구랑’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의 인지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청소년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지원 사업 인지도는 31.2%이다. 이는 ‘가정 밖 청소년 지원’ 사업, ‘위기청소년 지원’ 사업보다도 더 낮은 수치이다. 심지어 학업 중단 후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꿈드림)의 경험률은 고작 7.3%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 밖 청소년
며칠 전 홍대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 곱게 차려입은 앞자리 남성이 데이팅어플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좌석의 높이 차이로 인해 시야에 들어와서 보였을 뿐이다) 화면에 뜨는 얼굴들은 남성이었다. 연신 머리를 매만지며 메신저를 하는 것을 보며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는가 싶었다. 종종 대중교통에서나 공공장소에서, 길에서, 마을에서 성소수자들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이렇게 길에서 나와 같은 성소수자를 마주칠 때면 왠지 모를 동지(실제로 대만에서는 동성애자를 同志 로 지칭한다)를 만난 기분에 반갑기도 하고, 남(이성애자)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를 나만 볼 수 있다는 기분이 들어 두 차원의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서울에서 “내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는데?” 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인지하고 있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대기업과 (소위 명문)대학, 의료기관,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몰려있는 인구 밀집 대도시 서울에서는 성소수자들 또한 많은 수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10명은 동성애자라고 하는데 그들도 서울에 많이 몰려있으니 동네에서,대중교통에서,학교에서,직장에서 최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쟎아요” 벌써 30년 전, 추억의 영화 제목이 새삼스럽다. 성적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한 여중생의 실제 유서 마지막 문장이 영화의 모티브였다. 청춘 배우들의 인기와 연기력이 더해져 영화는 종전의 히트였다. 한국 사회에 ‘행복과 경쟁’에 관해 던진 충격적 질문에 사뭇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었다. 질문은 반란이 되었다. 급기야 5년 후 서태지의 ‘교실이데아’ 혁명으로까지 이어졌으니 말이다. 한때 유행어가 되었다. 시험 성적을 가지고 나무라던 부모님과 선생님을 향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랑께요~’ 라고 나는 또래들과 함께 키득거리며 혼날 위기를 모면하곤 했었다. 반강제적인 학원, 과외와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는 소심한 저항도 사뭇 용인되던 때였다. 그 때는 그렇게 농담이 통하던 시대였다. 어이없는 미소를 짓곤 하던 어른 세대들이 우여곡절 인생살이를 지내오면서 ‘행복의 실체’를 이미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영화가 개봉한 1989년은 노태우 정부의 과외 허용 조치로 사교육 시장이 후끈 달아 오르던 시기였다. 경제는 3저 호황에 힘입어 연평균 10%의 비약적인 성장세를 이루었다. 87년 민주화 국면과 88년 올림픽 신
지난 8월 31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이른바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4번째로 ‘2050년 탄소중립 이행’을 법제화한 나라가 됐다. 청와대는 이튿날 브리핑에서 “대한민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법은 우리나라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선진국이 아님을 명백히 드러낸다.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이라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0년 대비 45% 이상’ 감축하라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국제 권고치에 한참 못 미친다. 목표에서부터 국제적 기준을 어길 수 있음을 법에 명시한 꼴이다. 기본법의 이름에서도 ‘녹색성장’의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다. 같은 이름으로 4대강을 파헤친 개발만능·토건국가의 명맥은 그렇게 이어졌다. 단 하나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도 멈추지 못하고, 전국에 10개 신공항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지금 정부의 ‘말뿐인 탄소중립’ 행보를 보면 이 법이 ‘탄소성장기본법’이라는 비아냥과 의심을 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이산화탄
2021년 8월 2일, 문재인 정부는 탈시설로드맵-탈시설에 대한 중장기 정책계획-을 발표했다. 이 탈시설 정책계획에 대하여 일부 장애인의 가족은 강한 반대를 표현했다. 한편 탈시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장애인권운동단체와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한 최혜영, 장혜영 의원 역시 탈시설정책계획의 한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글에서는 탈시설을 권리로써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과 탈시설 정책계획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다. 탈시설이란 거주시설에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배경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인들이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배제된 채 살아온 현실이 존재한다. 장애당사자로 태어난 필자 역시 등록된 시설은 아니지만 25년을 지역사회와 떨어진 종교공동체에서 살아왔다. 장애 아니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바라보았던 대한민국에서 가난했던 나의 친 부모가 나를 양육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난 많은 장애인권운동가 분들이 저항을 통해 만들어낸 활동지원제도로 활동지원사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역사회의 인권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자립 이전 나의 삶과 활동을 하며 만난 장애인거주시설
며칠 전 친구가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한 정치인의 퀴어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 발언이 왜 혐오차별 발언인지 궁금하다고 나에게 물었다. 퀴어축제를 수용할 권리도 그리고 퀴어축제를 거부할 권리도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 정치인의 논리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었으리라 싶었다. 나는 퀴어축제가 단순한 축제나 놀이가 아니라 1969년 미국의 스톤월 항쟁에서 기원이 된 성소수자 희생과 차별의 역사가 담긴 항쟁의 성격을 지닌 집회이고, 전 세계에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권리를 증진하고 차별에 맞서기 위해서 열리고 있다며 진땀을 흘리며 장황한 설명을 했다. 또 한국에도 성소수자들이 정말 많고 차별과 혐오로 인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적 타살을 당하고, 나 또한 성소수자 운동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게이인 친구를 통해 이런 문제를 알게 되었다며 나의 관점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설득했다. 질문을 한 친구는 즉시 수긍하지 않았지만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눠줘서 고맙다고 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젠더, 난민 등 이슈를 둘러싸고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화산처럼 발화되고 있다. 과연 민주주의 공론장에서 민감한 갈등들을
12시를 조금 넘긴 점심시간.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40대 라이더 앞으로 10 미터가 넘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쓰러졌다. 라이더는 도로 위로 쓰러진 나무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했다. 올해 4월 30일 안양시에서 있던 일이다. 피해자는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 날은 비가 오지도 않았고 바람이 불지도 않았다. 이 사고에서 인터뷰한 전문가는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이제 수령이 3~40년 넘었으니 노후되어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문가가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있다. 자연에서 플라타너스는 원래 250살 넘게 살아가는 장수와 건강하기로 유명한 수종이다. 종자를 가장 왕성하게 생산하는 시기도 50살에서 200살까지이다. 안양에서 쓰러진 플라타너스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채 스무살 성년이 안된 어린 나무란 뜻이다. 이 나무가 운이 나빠 쓰러진 것은 아니다. 작년 8호 태풍 바비부터 9호 태풍 마이삭과 10호 하이선까지 3번의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가로수는 8,939그루다. 그 중에 6,572 그루(73.5%)가 쓰러지거나 뿌리가 들렸다. 보통 건강한 나무는 강한 비바람에도 충분히 버틸수 있다. 그러나 도시 나무들은 우리가 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