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중국이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에 '관계파괴'까지 언급하는 등 연일 비난에 가까운 반대 공세를 펼치면서 한·중 관계에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 정부를 향해 당장 직접적인 보복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낮지만, 사드 논의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미·중 간 동북아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몰린 우리 정부로서는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중국이 한·중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중국 공갈론'을 기대하기에는 이미 선을 넘었다는 비관적인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 정부는 "경제는 경제 논리대로 돌아간다"며 악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23일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에 따르면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이날 오후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가 "한·중 관계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다"면서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며, (회복하는 데)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 파괴'라는 직설적 표현은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중국 정부 관료의 발언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으로, 단순한 반대 입장 표명이 아닌 '위협성'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중국 매체 신랑군사망은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를 인용해 "개전(開戰) 시 중국 공군은 폭격기를 발진시켜 1시간이면 한국의 사드 기지와 일본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파괴할 수 있다"며 "사드 레이더는 중국 전역의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어 중국으로서는 사드를 제1차 공격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중국군 기관지를 인용해 군사적 보복 조치를 직접적으로 '경고'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들은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가 점점 고조되고 있고 더 나아가 구체적인 보복 조치가 열거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서면서 '제2의 마늘파동'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 2000년 '농가 보호'를 명분 삼아 중국산 마늘의 관세율을 10배로 올렸고, 이에 중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금지했었다.
중국이 당장 경제적 보복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군사 조치 강화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특히 북·중 접경 지역의 방공망 강화와 군사력 집중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중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31A의 발사 장면을 최초로 공개하고 신형 전략폭격기 '훙'(轟)-6K 편대의 장거리 폭격 훈련을 소개하는 등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역대 최상의 관계라고 평가됐던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드 배치를 계기로 관계 회복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이후 사드 배치 논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반대 논리에 공감할 수 없는 측면이 많지만 상대방을 무작정 배제할 수 없는 게 외교의 현실"이라며 "한·미뿐만 아니라 한·중, 한·미·중 간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 기고한 '사드 배치의 국제정치와 한국 외교의 방향'이라는 글을 통해 "미국을 통해 성동격서(聲東擊西)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고 득(得)보다 실(失)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개연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 소장은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을 다 같이 고려하고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지정학적 이해와 국력에 부합한다"며 "사드 배치 문제는 미·중이 우선적으로 전략 대화를 통해 다루게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적 우려를 충분히 전달하고, 미·중 대립이 아닌 협력 사안이 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