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려움’ 나와 세계 평화의
적”
“미국 또다른 전쟁의 피해자 될 것”
“남북한 형제 동포애와 인간애로 대화해야”
결국 이라크에서 총성과 사자(死者)의 신음소리가
울리고 말았다. 한편, 이라크 전 이후 한반도 위기설이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불황까지 더해 국민들의 위기의식은 높아만 가고
있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전쟁지지와 파병 결정에 대해 사회 곳곳에서 반전, 파병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목과 대립이 격해지고
있다.
전운이 고조되던 지난달 16일 평화를 일생의 수행 주제로 삼아온 틱낫한 스님(77)이 한국을 방문했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라마와
함께 세계 2대 영적 스승인 틱낫한 스님. 선승이자 시인이며, 평화운동가인 그는 방한일정 내내 곳곳을 다니며 상심해 있는 중생들을 영성과
평화의 메시지로 어루만졌다.
스님의 강연장은 전쟁으로 인한 위기의식이 높아진 탓인지 가르침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부시는
정치인일 뿐 평화 위한 단련 안됐다”
“부시 대통령이나 블레어 총리는 정치에 대해서는 단련이 됐지만 평화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수행이 안됐다. 정치에도 정신적 평화가 필요하다”
첫 방한일정으로 지난달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스님이 전한 메시지다. 전운이 고조돼있었던 시기라 단연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은 이라크 전쟁과 한반도 평화였다.
스님은 베트남 전쟁을 예로 들며, “만약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단행한다면, 멀지 안은 때에 또 다른 전쟁이 미국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전쟁을 일으키려는)지도자들에게 충고”했으며,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는 전쟁의 고통을 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남북은 한 형제 동포애로 대화해야”
틱낫한 스님은 북핵 위기에 직면해 있는 남한 정부와 국민들에게 “북한은 남한의 형제이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남한은 북한이 형제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어떠한 전쟁도 용납되지 않으며, 따라서 남한이 먼저 공격하지 않을 것과 다른 나라가 공격을
해오면 보호해 줄 것을 자비로운 언어로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선언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동포애와 인간애에 기초한 선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만약 북한 국민들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핵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때문이라며, ‘북의 두려움’을 줄이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스님은 통일을 바라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행보를 많이 하는 것보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견고히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교는 살아있는 생명체”
스님은 “불교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시대 변화에 부응하고, 수용하기이해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지난 25년 동안
서구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서구의 특수한 환경에서 불교를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 결과 현재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수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스님은 “불교는 제가자든 승려든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며, “서양인들은 승려가 아님에도 수행에 참여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많은
것을 얻는다”고 전했다.
끝으로 스님은 “이번 방한 기간동안 많은 한국 불교 지도자들을 만나 불교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내안의
‘화’, ‘두려움’벗어라
“Mindfulness(마음 챙김)을 통해서 내안의 ‘화’와 ‘두려움’을 다스릴 때만이 나와 내 가족, 형제들에게 평화가 찾아온다”
틱낫한 스님의 첫 대중과의 만남은 지난달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컨벤션 센터 강연장에서 2,5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화(anger)’를 주제로한 강연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화를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안내했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비와 깨어 있음, 걷기 명상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스님은 화를 “어떤 하나의 좋지 못한 에너지로 자비심을 억제하는 힘”으로 정의하고, 마음 속 화를 다스리는 문제는 결국 “자비의 힘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비를 가꾸기 위해서는 깊은 지혜를 가져야 하며, 지혜를 가꿔가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음’(정념)을
개발해야 한다”고 설법했다. ‘깨어 있음’이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순간 순간을 살피는 것”이다.
스님은 “만일 근심과 걱정,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면 바로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훌륭한 수행자라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바로
그때, 거기서, 온전히, 깨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한발한발 알아차리면서 걸을 때 정념의 힘을 개발할 수
있다”며 ‘걷기 명상’ 수행법을 몸소 보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시종 스님의 가르침에 눈을 때지 못했다.
틱낫한 스님은 누구? 달라이라마와 함께 세계 2대 ‘영적 스승’으로 불리고 있는 스님은 1926년 베트남 중부에서 태어났다. 베트남 왕조의 명문 관료 가문에서 태어난 스님은 16세에 불가에 입문했으며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과 컬럼비아대학 등에서 불교 진리를 전파하는 강의를 하면서 서구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67년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을 받는 등 평화운동을 위해 헌신 해왔다. 그러나 자국인 베트남 전쟁 당시 서구에서 벌인 반전운동으로 사이공측의 미움을 산다. 호치민 정권은 스님을 ‘서구 자본주의에 물든 종교인’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1973년 프랑스로 망명한 스님은 베트남을 탈출하는 보트 피플을 지원하는 운동을 펼치면서 1982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라는 명상수련원을 설립한다. ‘자두 마을’을 뜻하는 플럼 빌리지 는 부처님의 첫 제자가 1250명이었던 것을 기려 틱 스님이 1250그루 의 자두나무를 심으면서 붙인 이름이다. 국내에서는 스님의 저서 ‘화’가 베스트셀러로 7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
세계 평화 전도사
틱낫한 스님은 지난 22일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반전, 평화 집회에 참가해 전쟁 중단과 남북화해 등의 주제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걷기 명상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서 스님은 “휴대폰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북한의 대통령에게 다른 하나는 남한의 대통령에게 전달해 매일 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하며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명진출판사와 공동으로 틱낫한 스님을 초청한 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는 “틱낫한 스님의 방한 일정 중에 반전과 평화에 관한 행사가
많은데, 스님이 방한하자 전쟁이 터져 침통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스님은 이후에도 대구, 부산, 광주 등 지방 강연과, 한국 불교 지도자인 서옹 스님 예방,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위한 걷기 대회 등에 참가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설파하는 데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