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 노조 파업 ‘찜찜한’ 합의
노조 파업 정부 대응 미숙 지적
조흥은행, 3년간 독자 경영 보장
전산망다운으로
금융대란 직전까지 같던 조흥은행 노조의 본점 점거 농성이 파업 5일만에 타결됐다.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간주하고, 막판 공권력
투입을 검토하는 등 강경 대응 방침을 내세웠던 정부는 “노조 협상에 있어서 대화와 타협이라는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번
협상 역시 지난 화물연대 파업협상처럼 정부가 노조의 입장을 대폭 수용한 것이어서 정부의 노동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사·정 마라톤 협상끝 타결
6월21일 새벽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 최영휘 신한금융지주회사 사장, 홍석주 조흥은행장,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 허흥진 조흥은행 노조위원장은
서울은행회관에서 만나 △조흥은행(전산부문 포함) 3년간 독립 법인 유지 및 최대한 독립적 경영 보장 △고용 보장과 인위적 인원 감축 배제
△2년후 통합추진위원회를 통한 통합을 추진하되 1년 이내 마무리 △3년 동안 조흥은행 임금을 신한은행 수준으로 인상 등의 10개 핵심 쟁점에
대해 합의했다. 또한 신한지주와 조흥은행은 이번 파업과 관련해 주동자의 사법처리 등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민·형사상의 일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이는 결국 은행 매각 철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흥은행 노조의 주장이 대부분 수용된 결과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노-사간의 협상 대상이 아닌 정부의 금융정책에 파업으로 맞선 노조를 상대로 사태 해결에만 집착해 이들의 무리한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임으로써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노사관행을 답습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법과 원칙’을 내세웠던 정부가 또다시 불법파업과 집단이기주의에 밀리는 바람에 앞으로 줄줄이 예정된 노동계의 하투(夏鬪)와 금융구조조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 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인사는 “지난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가 화물노조의 입장을 대폭 수용함에 따라 친노조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며 이번 파업 역시
“조흥노조의 불법 파업에 강경 대응하겠다던 원칙을 깨고, 노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함에 따라 또다시 ‘무원칙 노조정책’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 타협 중재 불가피
이번 파업 협상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게 정부 측 인사의 설명이다.
정부는 조흥은행의 매각이 실패할 경우 은행 민영화라는 금융구조조정의 대전제가 흔들리게 되고, 조흥은행 매각 여부가 국가 신용등급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로 조흥은행 매각을 지난달 말까지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이 강경·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파업으로 인한 전산망 중단과 예금 대량인출 등 금융대란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중재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협상타결 직후 “어쨌든 조흥은행 매각이라는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느냐”고 밝혔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자세는 ‘협상 타결에
급급해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일관되게 ‘노조의 경영개입 불가’원칙을 천명해 왔으나 이번 협상에서는
합병시기나 은행장 선임 등 경영권에 관련된 사안을 협상의제로 삼아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6월21일 심야협상에서도 정부 관계자들은 협상에는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신한지주 측에 경영권 관련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며 신한 측의 양보를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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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총파업을 선언한 조흥은행노조원 6천여 명은 파업이 철회된 22일까지 조흥은행 본접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노조원 전원 복귀, 정상 영업
조흥은행 노조는 6월22일 오전 8시50분 총파업 종료를 공식 선언했으며, 조합원들은 23일부터 정상 업무에 복귀했다. 조흥은행도 6월22일
오전부터 서울 역삼동 중앙전산센터 직원 340여명을 전원 복귀시키고 배치(Batch) 작업등을 포함해 각 영업 점포별로 정상 영업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앞서 노조는 이날 새벽 5시30분부터 협상 타결안에 대해 조합원 동의를 묻는 찬반 투표를 실시, 투표인원 5,033명
중 3,148명(59.09%)의 찬성을 얻었다.
그러나 일부 노조원들은 협상 타결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등 아쉬운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분회 소속의 한 노조원은 “협상이 타결되서
기쁘기는 하지만, 조흥은행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찹하다”고 말했다. 다른 노조원은 “3년 간 독립경영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합병이
본격화되면 구조조정에 의한 감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은 “이번 합의과정에서 정부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상당한 노력을 했다”며 “일괄 매각을 철회시키지
못해 조흥은행 조합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허흥진 조흥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원들에 대한 협상타결 보고에서 “매각 철회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절반의 승리밖에 이루지 못한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말해, 향후 투쟁의 불씨를 남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금융노조는 조흥 사태 해결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6월30일 총파업에 참가하기로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전무는 “노동계는 정부가 말로만 ‘불법 엄단’이라고 하지 실제 그렇게는 못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다소 희생이
따르더라도 ‘원칙대로 한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흥은행 협상 타결 직후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번
조흥은행 파업 타결 과정에서 정부는 법과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해왔으며 조흥은행 노조와 신한지주 모두 이길수 있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에 타결된 합의안을 통해 조흥은행 노조는 고용을 보장받았고, 신한지주 측은 순조롭게 통합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특히 “노조 파업으로 사상 초유의 경제·금융 혼란이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파업사태가 조기에 타결될 수 있도록 정부가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파업 주동자 처리와 관련해서는 “사법기관이 사안의 경중을 판단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