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사권 인권침해 우려된다”
정통부 사법경찰권 부여, 시민단체 반발
불법 소프트웨어의 유통을 단속하는 정보통신부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기 위해 상정된 ‘사법경찰권의직무를행할자와그직무범위에관한법률’개정안(아래 개정안)이 지난 6월30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로써 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단속하던 체신청 직원들은 현장 단속시 수색영장을 청구하고, 직접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1995년 7월부터 사법경찰권을 부여받아 미인가 정보통신기기 불법 판매를 수사해오던 중앙전파관리소에는 무허가 감청 설비 판매에 대한
사법경찰권이 추가로 부여됐다.
사법경찰권을 가진 정보통신부 공무원은 기존 중앙전파관리소 직원 108명에서 이번에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 공무원 33명이 추가되 141명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개정안은 공포 후 3개월 후부터 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통부는 오는 10월부터 수사권을 가지고 단속에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SW
단속 공무원 사법경찰권 부여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문화연대, 민변, 정보공유연대IPLeft, 전보네트워크센터,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 등의 사회단체는
개정안의 철회를 위한 서명운동과 함께 대국민 홍보에 나섰다.
지난 8월9일 서울 용산전자상가 앞에서는 ‘정통부 공무원에 사법경찰권 부여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선전전이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선전전에 나선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박병길 씨는 “단지 단속의 효율성을 이유로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일은 인권침해의 위험이 따르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외국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처사로 밖에 볼 수 없다”며 개정안 철회를 주장했다.
이 자리에 정통부 지식정보산업과 하병준 사무관이 나와 이들과 대화를 요구했다. 하병준 사무관은 “법무부가 32개 분야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했는데도
유독 정통부만을 문제삼는 것은 이해 할 없는 처사”라며, “그렇다면 불법 소프트웨어를 유통시키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프로그램 하나에 20만원이 넘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외국의 대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불법소프트웨어를
단속하고, 그것도 모자라 수사권까지 준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되받았다.
개정안이 마련된 이유에 대해서 정통부 측은 ‘국내 불법소프트웨어 복제율의 증가와 이에 따른 미국의 통상 압력 때문이다’고 밝혔다. 하 사무관은
“미국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조사기관인 BSA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SW불법 복제율은 세계평균이 39%였던데 비해 우리나라는 50%였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세계 인터넷 강국인 한국이 동시에 불법복제 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사법경찰권
부여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적재산권에 대한 침해가 높아지자 미국 등 선진국들의 통상 압력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미국은 지난
2월 무역대표부(USTR)를 통해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침해율 상승에 따른 해소 방안으로 소프트웨어단속 공무원에 대한 사법경찰권 부여를
요구한바 있다.
그러나 정통부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정보공유연대 IPLeft 측은 “복제율이 50%라면 우리나라 기업중에 두 명중 한 명이 불법복제된 SW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BSA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소프트웨어 이익단체이며, 그들이 발표한 불법복제율이
자세한 통계에 의한것 같지만 사실 단순히 생산된 하드웨어 대비 판매된 소프트웨어를 계산해 산출한 수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정보공유연대 칼럼에서 오병일 씨는 ”이번 개정안은 지난 4월29일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과 함께 미국의 통상 압력에 우리 정부가 굴복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법률이 국민의 의견수렴과 사회적 토론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 졸속적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정안
미국통상압력에 졸속 처리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지난 6월 25일 국회 법사위원회에 보낸 공개 서안에서 정통부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사법경찰권법 개정안은 과잉입법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시민행동은 이 서안에서 “그동안 정통부 공무원들이 불법소프트웨어 단속 과정에서 불시에 사무실을 수색, 압수하는 등 인권침해를
자행해 왔다”고 지적했다. 시민행동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단속한다는 미명하에 정통부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직원들은 민간 기업의
사무실을 영장도 없이 불시에 수색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개인의 생명과 재산, 주거를 임의로 제한할 수 없다는 헌법 정신에 대한 침해이며,
기업에게는 심각한 영업방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소프트웨어를 단속하기 위해 수사권까지
부여하게 된다면 이 같은 인권침해를 제도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도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단속’은 정보통신부 장관의 권한이지만, ‘수사’는 검사의 권한이라고 밝히고, 수사는 단속과는
질적으로 다른 조사행위이기 때문에 압수, 수색, 체포, 구속 등이 허용되는 수사권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검사나 경찰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통부 직원에게 수사권이 부여되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높기 때문에 제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법경찰권을 가지고 수사를 하더라도 검찰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인신 구속 등 인권침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게 정통부 측의
설명이다. 또한 “법무부가 ‘특별 사법경찰 관리 직무규칙’을 만들어 사법경찰권이 주어지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침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정통부 관계자는 전했다.
그 밖의 사법경찰권 논란
정보통신부와 함께 사법경찰권 부여를 위해 입법안을 국회에 상정했던 병무청 의 경우 법사위원회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병무청 관계자는 “병무비리 등 악재가 겹쳐 병무청 조직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사법경찰권을 부여받지 못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번 국회회기 내에 사법경찰권을 부여받기 위해 법무부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지난 8일 공정위와 법무부에 따르면 양 부처는 참여정부 출범후 공정위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협의를 거듭하고 있으나 공정위 요구에 대해 법무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그동안 협조를 구하는 형태의 현 조사방식으로는 은밀히 이뤄지는 온갖 형태의 담합을 적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며 꾸준히 사법경찰권
확보 작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해 정기국회 당시에도 사법경찰권을 부여해달라는 공정위의 요청을 거절한데 이어 올해도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은 모습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보통신부에 대한 사법경찰권 부여와 달리 공정위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훨씬 크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혀 부정적인 입장임을 재확인했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