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입산 발목 잡는 핵
정부지원 않는 이상 현대만으론 중단 불 보듯…정부, “핵 문제 선결돼야”
“왜
고등어를 보내느냐?”, “우리가 언제 고등어를 보냈나?”, “고등어 그물에 걸렸으니 고등어가 아니고 뭐냐?”,
“알았다, 다신 안 보내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의아할 것이다. 이는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과 북한측 고위 관료가 북한 잠수정이 고등어 그물에 걸린 사건 발생
며칠 후 나눈 대화다.
물론 그 고위 관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서해교전 등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하지만 김윤규 사장은 “그러한 사안을 두고 농담조로
‘하지 말라’고 훈계를 하고,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정도로 북한과 이제는 대화가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김 사장은 대북사업이
꾸준히 지속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아산이 주도해온 대북사업은 정치권과의 결탁으로 비난을 받고는
있지만,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서로의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후 현대아산이 주도해왔던 대북사업의 장래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특히, 사업주체인 현대아산이 총체적인 경영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에다가 삼성 등 대기업들도 사업 참여를 꺼리는 형편이라 일부 사업의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남북교류와 더 나아가 통일의 길도 멀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쯤 되다 보니 ‘퍼주기’라고 지탄받아 온
이들 사업에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장전항 인수해야”
“대한민국이 동북아 경제 중심에 서려면 남북교류가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현대아산은 어려운 지경이다. 정부가 지원하고 6자 회담으로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금강산과 개성공단 사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북한경제전문가 100인 포럼’이 8월21일 여의도에서 개최한 ‘남북경협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 참석해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김 사장은 특히 적자를 면치 못 하고 있는 금강산관광 사업과 관련 “정부가 금강산 장전항을 현대로부터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장전항을 인수해 동북아경제중심 프로젝트에 부합되는 물류 및 관광항으로 개발하고, 현대는 매각대금을 금강산 현지 시설물 구축에 재투자해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장전항은 현대가 금강산 해로 관광을 위해 건설한 것으로 수심이 얕아 모래를 파내는 작업을 한 끝에 완성한 것으로 약 1,00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됐다.
장전항 인수에 대한 그의 발언은 주장의 형태를 띠었지만 거의 애원이나 다름없었다. 자금사정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는 또 현재
집행이 유보중인 금강산 관광객 경비 지원금 200억 원도 조속히 집행되길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한편, 김 사장은 전 국민을 상대로 주식을 공모해 대북사업을 국민적 사업으로 끌어올려 난관을 타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이르면 9월 초 주식공모를 시작해 열 주 단위로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금강산,
상반기 고작 1만7,000여명 관광
현재, 남북 간에 추진 중인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그리고 철도와 도로 사업은 그 성격에 따라 정부와 민간이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
철도·도로의 연결은 남북 당국자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의 경우 공단조성과 분양
관련 부문에서 노하우를 갖고 있는 토지공사가 현대아산과 사업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또 금강산 관광사업은 재정난을 덜어주기 위해 관광공사가
제한적인 범위에서 참여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은 토지공사가 시행자로, 현대아산이 시공자로 돼 있기 때문에 현대아산의 부담이 적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사업은 틀리다. 어디까지나
현대아산이 사업주체다. 따라서 현대아산의 위기는 곧 금강산 관광사업의 위기를 말한다.
한국관광공사 박춘규 북한관광사업단장은 금강산 관광사업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있으며 시급히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알려진 대로
금강산 관광객수는 2001년 들면서부터 급감해 엄청난 적자를 면치 못 하고 있다. 1998년 시작된 이래 2000년에는 21만2,020명까지
관광객이 늘었으나 2001년 5만8,000여 명, 2002년 8만7,000여 명을 기록할 정도로 저조했다. 올해도 상반기에 겨우 1만7,000여
명이 금강산을 찾았을 뿐이다. 이렇게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찾지 않다 보니 5억 달러에 달하는 관광비용을 지급하지 못 하고 있다.
육로 15만 원, 해로 30만 원까지 낮춰야
박춘규 단장은 공적자금이 투입 되지 않는 이상, 민간에 맡겨둔다면 금강산 사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인근 국가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비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수 없는 여건에서는 그나마 금강산 관광 결심을 했던 사람들마저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불러올 게 뻔하다는 생각이다.
해법은 있다. 박 단장은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관광코스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숙박과 레저시설을 더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격은 육로의 경우 15만 원, 해로는 30만 원까지 낮춰야만 경쟁력이 생긴다는 게 관광공사의 분석이다. 여기에 금강산 여행자에게 세액과
소득공제를 해주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그는 바라보고 있다.
박 단장은 제주 중문관광단지 사례처럼 정부가 숙박과 레저시설에 투자를 한다면 몇 배의 투자금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1980년
개발된 중문관광단지에는 정부가 257억 원을 투자했다. 현재가치는 3~4,000억 원을 호가한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도 정부가 금강산 관광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남북협력 기금을 적극적으로 투자해 금강산 관광사업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북에 지급해야 할 나머지 5억 달러의 지급을 유예해야 한다”고
말했다.
5억 달러 지급과 관련 현대아산은 물건으로 대납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그러나 “북측이 외화수입이
없기 때문에 현금을 고집해서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을 포함한 남북경협의 미래는 그다지 밝다고 말할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20일 남북경협협의서가 발효됐지만,
북핵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남북관계와 함께 국제적 측면까지 아울러 감안해야 하는 처지다. 금강산 관광 사업과 관련해서 통일부 박찬봉 정책심의관은 “금강산
사업이 가지는 공공재적 성격을 정부도 유념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북핵 문제가 선결돼야 정부가 새로운 활로를 뚫을 수 있도록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