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실력으로 다채로운 풍경을 선보여온 김진숙 작가는 올해로 제주 생활 6년차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의 빌딩 숲을 계속 그려오다 불현듯 제주살이를 시작한 그가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제주 곶자왈 숲의 내밀한 속삭임을 그린 회화들을 들고 상경했다.
3월9일부터 4월3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서 김진숙의 <유동적인 기억-제주의 숲(Liquid Memory-Forest on the Island)>전을 열기 위해서다.
전시장에서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주에서 분투해온 작가가 그려낸 온갖 색채와 빛으로 가득한 생명력 넘치는 감동적인 작품을 만나게 된다. 원시 자연이 주는 힘과 경쾌함, 그리고 순수하게 아름다운 색채와 빛의 유희를 아름답고 화려하게 구현한 작품들이다.
“겨울에도 푸르른 제주 숲에선 사계절 동안 변해가는 나무들의 색과 모양의 변화가 더 강렬해요. 제주 오기 전에는 도시 풍경을 그렸지만, 제주 곶자왈에서 만난 풍경은 제주의 태양빛이 고스란히 곶자왈 숲 깊숙한 곳까지 뻗어내린 신비로움, 그것이었어요.”
제주 곶자왈에서 작가가 만난 태양은 나뭇잎을 붙들고 있는 잎자루와 가지들의 붉은 빛깔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빛이었단다. 천년의 시간이 쌓인 곶자왈 분홍빛 땅에선 형광의 빛깔을 발산하는 뻗어가는 덩굴의 새 뿌리와 고목에 핀 이끼가, 그리고 낮은 숲을 이루는 고사리의 레이스 무늬가 자라난다.
작가는 천혜의 자연 속을 계속 걸으며 만난 다양한 색의 풀과 나무, 그 ‘선들의 중첩’을 캔버스에 표현해냈다.
‘도시의 세련된 공간’에서 ‘제주 곶자왈의 비경’으로
2017년 제주현대미술관 초대전만 해도 작가는 일상 풍경들을 직선의 빛 가득한 도시의 세련된 공간으로 표현했다. 안도 밖도 아니면서 동시에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한 그 '사이공간' 속에서 풍경은 서로 섞이며 흔들리는 모호한 일상의 삶을 은유적 풍경으로 만들어냈다. 모호한 풍경은 다채로운 중첩된 선의 운율에 따라 살아 숨쉬고 호흡하는 유동적인 기억(Liquid Memory)이 되어 서울 또는 파리, 뉴욕의 그 어느 거리에선가 금새 본 듯한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제주살이로 만난 야생 숲의 생명력과 매력
그러나 이번엔 야생에서 만난 생명력이 캔버스를 뚫고 나온다. 작가가 제주살이를 시작한 2016년 여름 이후 만난 제주의 야생 숲, 곶자왈이 뿜어내는 원시성과 풍요로움, 그 '아름답고 화려하고 거침이 없고 풍성하고 소박한' 자연 본래의 모습에 매료됐다.
그리하여 이전 작품의 주제가 안과 밖이 공유되는 도시의 ‘사이공간’의 은유라면, 근작에서는 한데 덩어리져 있는 곶자왈의 풍요로 작품의 주제가 바뀌게 된다.
작가는 제주의 숲에서 그에게 다가오는 원시의 호흡을 내뿜는 풍부한 자연과 바람을 만났고, 그 찰나의 순간은 작가의 내공 있는 중첩된 선과 풍부한 색채를 통해 되살아난 셈이다.
고정된 정물 풍경이 아니라 율동적인 빛과 생동감으로 가득한 살아 숨쉬는 풍경으로 말이다.
초기부터 작가가 풀어내는 '유동적인 기억'(Liquid Memory)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제주의 숲그림 연작이 이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입상, 전라북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