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녹스 LP파워 등 30여종 넘어
경기도 구리시의 한 도로변에서 'LP파워'가 '연료첨가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걸고 1리터 990원에 판매하고 있다. |
유사석유는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한 2001년 말부터 나오기 시작해 최근 ‘가짜’‘유사’휘발유 등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며, 불법으로 유통 거래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휘발유보다 ℓ당 500원 이상 싼 유사석유 제품은 지난해 세녹스 LP파워 등 18종이었던 것이 요즘엔 30종이 넘는다. 정상 휘발유보다 ℓ당 990원 싸게 팔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 자동차 연료에 적합하도록 개발한 휘발유처럼 사용되면서도 세금을 물지 않아 값이 싸다. 주유소에서 정상 판매되고 있는 휘발유는 교통세 주행세 등이 붙기 때문에 비싸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신성철 연구원은 “순전히 제조원가 측면에서 볼 때 유사휘발유의 첨가제인 솔벤트나 BTX(벤젠 톨루엔 크실렌) 가격이 휘발유의 제조 가격보다 높아야 하나,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솔벤트나 BTX 제품에 특소세를 부과하지 않는 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석유협회는 지난해 유사 휘발유의 판매량이 전체 휘발유 소비량의 13%에 해당하는 12억4,370만ℓ로 추산, 연간 최소 5,600억원 이상의 세수가 탈루되고 있다고 밝혔다.
유사 석유제품의 유통 및 판매는 서울과 지방도시 대로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도로변, 주택가, 카센터, 지하주차장 심지어 문방구 등에서 위험물 취급을 위한 안전시설이나 조치가 전무한 상황에서 주유한다. 휘발점이 낮아 날씨가 더워지면 쉽게 폭발하는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데도 주택가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23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된 석유사업법에 따라 정부가 최근 세녹스와 LP파워 등 유사 휘발유에 대한 강력단속을 천명하자, 인터넷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관련 카페만도 수십개가 넘었다. 일부카페에서는 유사 휘발유 판매 대리점을 모집하거나 배달도 가능하다는 글이 올라 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개정된 석유사업법(26조)에는 ‘누구든지 유사석유제품을 제조, 판매 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기존에는 제조·판매자만이 단속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사용자까지도 동일한 처벌받게 됐다. 지난달 4일에는 실제로 유사휘발유를 사용한 2명이 처음 적발됐다.
업체와 정유업계, 산자부 이견 여전
유사석유 판매에 대한 업체와 정유업계, 산자부간 질긴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세녹스의 경우, 대체연료이기에 “유사석유는 아니다”라는 입장과 정부는 엄연히 유사석유처럼 사용되고 있으므로 당연히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그 적법성 문제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올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세녹스 판매업체인 프리플라이트측의 책임자가 형사처벌을 받고 불구속된 상태인데, 판결이 나올때까지 판매를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세녹스는 3월 현재 약 870억원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도 법원 판결이 아니더라도 법 개정을 통해 유사석유의 유통을 근절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유사석유는 솔벤트 톨루엔 알코올 등을 혼합한 차량 연료 첨가제로 환경부는 연료첨가제의 비율을 1%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 비율을 반 정도로 맞춰 휘발유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산자부 관계자는 “유사석유가 마치 대체연료인양 선전하지만 이는 석유도 아닐뿐더러 엄연한 불법”이라고 못박는다.
전문가들은 가짜 휘발유는 차량 손상은 물론 안전사고까지 유발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현대차 고객서비스팀 이광표 차장은 “연료첨가제 및 유사휘발유의 주원료인 솔벤트는 고무를 녹이는 성질이 있다”며 “엔진오일이 연소실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고무로 된 피스톤 링을 녹일 경우 기름값을 조금 아끼려다 200만원 이상의 수리비가 들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얼마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충남 태안군의 모 아파트단지에서 유사휘발유를 가득 실은 트럭에 불이 나면서 인근에 주차돼 있던 승합차와 승용차에 옮겨 붙어 1,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20여분만에 진화된 사건이 있었다.
산업계, 교통세 등 세금 인하 요구
유사석유는 현재의 자동차의 연료시스템에서는 연료장치의 부식과 고무부품의 균열과 같은 문제점을 유발시킨다. 더구나 유통과정상 위험물 취급에 따른 조치가 전혀 없어 방치할 경우 온도가 올라가면서 폭발 등의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세금탈루도 주지의 사실이다. 휘발유는 현행 세법대로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등을 부과해야 하지만 유사석유는 이런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가짜 휘발유 1리터 사용시 제조 판매자는 리터당 861원의 탈세액을 부당이득으로 챙긴다.
이에 석유협회는 국제유가상승에 따른 산업계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교통세를 150원 인하하고 원유할당관세를 0~1%로 낮춰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유가상승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경감시키기 위해 원유 수입 관세 무세화가 긴요한 실정으로 현재 3%에서 원유할당과세를 0~1%로 낮추고 리터당 559원인 휘발유 교통세를 150원 인하해 휘발유관련 총 세부담(한국 862원 일본 649원)을 일본수준으로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또 에너지 소비 효율성 제고를 유도할 수 있도록 조세특례제한법상 에너지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현행 7%에서 15%로 높여주고 유사휘발유 단속을 강화해 줄 것을 촉구했다.
유사 석유의 범람에 주유소와 정유업계는 경기침체와 고유가에 맞물려 삼중고를 겪고 있다.
석유협회는 “근본적인 문제인 휘발유에 붙는 교통세 등 세금(소비자가의 70% 이상)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법적 제재를 가해도 유사 석유제품의 유통을 막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한석유공사는 유사휘발유가 일반 정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와 달리 불법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낼 수가 없어 유사휘발유가 국내 휘발유 소비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가 없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경유와 LPG 차량 증가와 함께 경기침체로 휘발유 소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실제로 유사휘발유로 옮겨간 수치는 파악할 수 없지만 최근 유가급등으로 유사석유를 찾는 운전자들이 많은 건 알고 있다”고 말한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