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판.검사가 되기 위해 치르는 현행 사법시험을, 미국처럼 법학전문대학원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는 ‘로스쿨’ 제도로 개선하는 방안에 대한 찬반논란이 이해관계에 따라 그동안 팽팽히 맞서왔으나, 10월5일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가 로스쿨 도입 방안을 확정, 발표함에 따라 이에 대한 논란은 매듭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이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가운데 적지 않은 내용상, 절차상의 문제가 남아 있다. 아직 구체적인 로스쿨의 구성 및 운영방식에 대해 아무것도 확정되지 못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대 생존 경쟁 치열
2006년까지 10개 안팎의 법학대학을 선정해, 매년 1,200명 정도만 법조인으로 양성키로 해, 대학들은 벌써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대학간 경쟁력에서 뒤지고 대내외적 이미지 제고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9~12개 대학에 로스쿨 당 80명~200명의 신입생을 선발, 1,200명의 정원을 모집할 계획이다. 12개 대학에 설치한다 해도 법대나 법학과를 둔 97개 대학들이 모두 나설 경우 경쟁률은 8대 1에 달한다.
이에 따라 로스쿨 선정 기본 요건이 학부정원 200명과 교수 20명 이상, 법대 단독건물 등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수확보와 시설 확충 계획을 발빠르게 준비하고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단독 유치가 어려운 대학들은 법과대학의 위상 추락과 함께 학과 통폐합 등 대학의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불안에 떨고 있다. 이에 따라 타 대학과의 컨소시엄 구성을 모색하는 한편, 로스쿨 입학정원 대폭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입학 정원이 1,200명으로 확정될 경우 법조인수를 늘림으로써 경쟁을 강화시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당초 로스쿨 도입 취지에 배치된다며 현재 논의 중인 로스쿨 입학정원 1,000명 수준을 2~3배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중호 중앙대 법대학장은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 대학이 전국적으로 30개 대학인데 절반 이상이 탈락하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신림동 고시촌이 사라진다
로스쿨 도입은 해마다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사법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만능주의’와 평생 고시에만 매달리는 ‘고시 낭인’ 문제 등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그러나 대학 4학년과 함께 로스쿨 과정도 거쳐야 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큰 서민층은 법조인이 되기까지 진입장벽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사립대 로스쿨 등록금이 학기당 2,000만~3,000만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연간 1,500만원 정도의 학비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로스쿨 인가를 받기 위해 모의 법정과 법학 도서관, 다수의 전임 교수 확보 등 대학측이 갖춰야 할 요건에 돈이 많이 드는데다, 입학정원도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로스쿨 입학자격이 4년제 대학 졸업생으로 제한돼 있어 고졸 출신자들은 아예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차단됐다.
법조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정원이나 등록금이나 장학금 제도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어 혼란스럽다는 불만이 많다. K대 고시실장 김종우(26)씨는 “로스쿨을 대비해야 할 후배들은 무엇보다도 비싼 등록금에 대한 걱정이 많다”면서 “몇달동안 로스쿨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개위가 이제서야 도입한다고만 말하는 것은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말했다. 여기에 사시와 로스쿨을 5년간 병행한다지만 연수원 과정 2년까지 고려하면 2009년부터는 사시합격자의 수 감소가 사실상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따른 수험생들 불안도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동호회와 관련 홈페이지에는 로스쿨에 대한 질문과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로스쿨 때문에 사시를 중단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도 2년안에 결판을 낼 결심으로 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대표적인 사법고시의 메카인 서울 신림동 고시촌은 사시 준비생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신림동 한 법학원 원장은 “현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은 3년 정도 매달려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이라며 “다만 최근 도입된 토익제도와 로스쿨 제도로 인해 충격을 받은 사시 준비생이 적잖이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로스쿨, 전면 백지화 주장 제기 이 때문에 로스쿨 도입안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월8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까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스쿨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개혁내용을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법조계의 이해관계를 졸속으로 봉합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특히 기존 다수의 법대 중 소수만을 로스쿨로 전환시키면 각 대학이 로스쿨을 지정받기 위해 벌이게 될 과열경쟁은 대학 사회에 심각한 파행과 후유증을 불러 올 것이며, 대학 서열화와 전공 서열화의 정점에 놓여있는 법학교육의 혼란은 고등교육 전체의 왜곡과 파행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매우 높은 교육비로 로스쿨의 경제적 진입장벽이 높아져 법조 인력에서도 계층 편중화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며 “저소득층의 교육기회 부여를 위해 로스쿨 교육비는 국가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교협은 로스쿨 전체 정원을 1,200명에 한정하는 것에 대해 현행 사법시험 제도에 비해 거의 변화가 없는 결과로 매년 2,000명 이상의 법률전문가를 배출돼야 하고, 로스쿨 설치지역은 지역간 균형발전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도 덧붙였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