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대통령의 관저로부터 100m 이내의 집회와 시위를 일괄 금지한 법률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대통령의 안전이라는 법익과 무관한 모든 집회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 침해라는 취지다.
22일 헌법재판소는 서울 종로 대심판정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2항에 대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한 노동조합 투쟁위원회 대표 A씨는 2017년 8월7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옥외 집회를 주최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청와대에서 분수대는 청와대 경계지점부터 약 68m 거리인 것으로 파악됐다.
집시법은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재소장 공관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 집회 및 시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 측은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신청했다. 법원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에 필요한 조치의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며 A씨의 신청을 인용했다. 집회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취지다.
헌재는 위험 상황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집회도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대통령 관저 인근 일대를 광범위하게 집회 금지 장소로 정해져 있고, 대규모 집회로 확대될 우려가 없는 소규모 집회도 금지된다.
대통령의 안전이나 관저 출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장소에서 소규모 집회가 금지된다면, 대통령 및 가족의 신변 안전 및 대통령 관저 직원과 관계자 등의 출입을 보호하는 법익을 해치지 않는 집회까지 금지하게 되는 것이란 취지다.
집시법은 이미 폭력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은 경호 구역을 지정해 폭력 상황에 대처하도록 하고 있다. 헌재는 이러한 법률이 이미 있기 때문에 집시법이 침해의 최소성에도 위배된다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단순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 보호에 관한 법적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가 법률을 개정하도록 하되, 만약 국회가 개선 입법을 하지 않는다면 2024년 5월31일까지만 현행법이 효력을 갖도록 했다.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별개 의견에서 결론은 같지만, 논리 구성 방식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대통령의 관저를 광의의 관저와 협의의 관저로 구분해야 하고, 광의의 관저 인근의 모든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2003년부터 집회를 금지하는 장소를 줄여왔다. 외교기관 인근 집회가 금지에 대한 헌법불합치가 선고된 해는 2003년이다. 2018년에는 세차례에 걸쳐 ▲국회의사당 인근 ▲국무총리 공관 인근 ▲각급 법원 인근의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헌재 관계자는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집회를 금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관저 인근의 모든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함으로써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상충하는 법익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으므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