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모든 면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러시아가 제 정신이기 때문에 바보처럼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 러시아가 침공 10일 만에 우크라이나를 항복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 러시아 군대는 1990년대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침공할 때보다 훨씬 발전해 낡은 대포로 민간인 거주지를 마구 폭격하지 않을 군사적 기술과 정보력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 모두 틀렸다. 마지막으로 핵 공갈이 어불성설이라고 믿으며 지구상 모두를 파괴할 핵무기로 사람들을 위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그렇다.
새해가 돼서도 유럽은 여전히 의문에 사로잡혀 있다. 한때 세계 3위의 군사강국이 이웃의 작은 나라를 침공한 러시아가 현재 보이고 있는 무능이 바로 그것이다. 미 CNN은 1일 새해 전망에서 유럽은 이제 쇠락하는 러시아가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군사력 현대화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모두 헛수고였음이 드러났다. 국경에서 수십 ㎞ 떨어진 곳에서조차 보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나치”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구한다는 평가는 예스맨들에 의해 왜곡된 것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은 팬데믹 고립 속에서 그 말만 듣고자 했다.
러시아는 서방이 분열돼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서방은 기꺼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재래식 군사력이 한계에 도달한 러시아는 끝없이 금지선을 바꾸고 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일들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이제 유럽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서방이 단결했다는 점이다. 과거 이라크, 시리아를 두고,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리는 문제를 두고 서로 대립하던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아직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선언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러시아에 유리한 상태로 전쟁이 교착될 수도 있고 러시아가 진격할 수도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인내심이 바닥나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휴전협상을 압박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적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 점령지를 사수하고 있는 러시아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병력, 탄약 부족 등 문제가 많다.
나라를 지키는 우크라이나군은 사기가 높고 서방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동북부 하르키우를 탈환한 뒤 전세는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상태다.
러시아 선전 매체들은 하르키우를 빼앗긴 뒤 러시아가 “장갑을 벗어야 한다”고 떠들었다. 마치 쓰지 않은 힘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러시아군이 나토군에 필적하기엔 수십 년 걸려도 어려울 것이다.
핵위협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 역시 잘 먹히지 않는다. 나토는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러시아 군대를 궤멸시킬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 또 인도와 중국 등 러시아의 우호국이 러시아의 핵위협 자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불과 60㎞ 밖에 안 되는 보급선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러시아가 핵공격을 하려 한들 과연 실행할 수는 있는가? 핵보유국의 전략 미사일과 보복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십 년 동안 유럽안보를 쥐락펴락하던 러시아는 이제 그다지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무고한 우크라이나 시민들 수만 명이 푸틴의 이기적이고 잘못된 차르 제국주의에 희생됐다. 독재국가는 독재자가 원하면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또 유럽은 러시아 천연가스와 석유 등 화석연료 의존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일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러시아가 그냥 약한 것인지 아니면 약해진 러시아가 위험한 것인지 여부다.
지난 70년 이상 서방과 러시아는 상호확증파괴 능력으로 세계를 양분했다. 공포를 바탕으로 하는 평화였다. 그런데 러시아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오판의 가능성이 생긴다. 다른 독재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국내 공포정치에 의지하다가 서서히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유럽은 이제 재앙의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상대해 쇠락을 관리해야 한다. 유럽은 러시아를 위협으로 간주할 필요가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