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기아자동차의 노조간부 채용비리가 노동계의 ‘쓰나미’가 되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회사의 부당성을 감시, 감독해야 할 노조 간부가 오히려 ‘취직 장사’를 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더군다나 회사 임원직과 정치인 등 고위 공직자까지 채용비리에 가담했다고 하니, 사건의 심각성은 우리나라 노동계 전체를 뒤흔들만큼 불어났다. 이번 사건이 갖는 의미는 수십년전부터 ‘관행’처럼 암암리에 이뤄졌다는 사실에서,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어디 기아차만의 문제겠냐”
기아차 생산계약직 채용비리 사건은 처음에 개인비리 차원이었지만, 이제 사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아차 전 공장은 물론, 현대차 전 공장으로 사태가 확대되고 있고,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회사 간부 등도 문제의 핵심에 있는 상황이다. 이는 곧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진 민주노총을 위기에 몰아넣었고, 대기업 전체 채용비리 의혹에도 불길이 번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지인 광주지역에서는 이번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에 대해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관행화 됐던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돈이나 비리규모가 커져 비리가 드러나게 됐다. “채용시기가 되면 노조간부는 물론 정치인과 본사 간부 등의 추천을 안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기아차 박홍귀 노조위원장의 말에서도 채용비리가 얼마나 얼룩져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철저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준 노조간부와 이에 편승한 회사 측의 공조로 이뤄진 비극이다. 특히 ‘권력화 된 대기업 노조의 만행’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고 비정규직 등 노동 취약계층의 보호자로 자임하던 대기업 노조가 계약직 취업희망자들에게 금품을 받고 취업장사를 했다는 데 사회적 충격이 크다.
사회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구조상 광주공장 기아차 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기아차 박홍귀 노조위원장은 “어디 기아차만의 문제겠냐”면서 “대한민국 대기업 중 어디도 이같은 채용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다른 대기업의 채용비리도 예외일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현대.기아차의 한 고위관계자도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힘있는 곳으로부터 청탁을 받는 것은 어떤 기업이라고 예외가 있겠느냐”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상대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기아차 측의 ‘물타기 공세’일 수도 있겠으나, 현 노동시장을 따져보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조 간부 ‘특권층’ 대접
이제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닌 대기업 노조가 회사의 경영에 개입하는 권력자의 위치에 서게 되면서, 회사측은 노조의 눈치를 살펴 끌려다니는 상황이다. 일부 대기업 노조 간부들은 고급 승용차를 제공받는 등 외형상으로도 ‘특권층’ 대접을 받고 있다. ‘노조위원장은 대표이사’, ‘노조 실국장’은 ‘회사임원’과 같은 급으로 대우할 것을 요구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로 인식됐던 노동자가 어떻게 막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국내외적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경제발전의 발목을 붙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걸핏하면 파업을 강행하고 투쟁을 부르짖는 강성노조의 외침에 외국의 투자가 부진하고 국내 경영권도 생산이 중단되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돼 웬만해선 노조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는 계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기업은 공장의 이전과 통폐합은 물론 생산라인 교체, 신기술 도입에 따라 인력을 재배치할 때 노조의 동의를 얻게 돼 있다. 따라서 회사의 경영권이 강성노조의 간섭에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 조선 정유 석유화학 등 수익성 높은 대기업과 일부 공기업에서는 기업별 노사교섭 체제의 특성상 파업 위협 등에 취약한 사용자가 노조측의 인사 민원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정유. 화학업체는 생산라인 한 곳이 멈추면 공장 전체를 세울 수밖에 없는 특성상 노조 힘이 막강하다. 현재 국내 노동계 상황이 일반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전문가와 노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대규모 채용이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아 청탁이 은밀하게 이뤄지고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2003년 여름에도 LG화학 여수공장 현직 노조 수석부지부장과 전직 부지부장 등 2명이 취업을 미끼로 1억5,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지만, 외부 브로커들만 개입했고 실제 채용된 사례는 없어 그대로 사건이 덮어진 적이 있다.
청탁비리 날 수 밖에 없어
대기업의 생산계약직에 채용비리가 일어나는 것은, 취업희망자는 많지만 자리는 한정돼 있고 특별한 기능이나 자격증이 필요없는 생산직이다 보니 자연히 인맥이나 배경을 통한 인사개입이 두드러지게 됐다는 것이다. 광주공장 기아차의 한 생산직 직원은 “생산직 선발을 위한 구체적인 인사규정이 없기 때문에 외부 세력에 의한 청탁비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직자들이 대기업 생산직에 손을 뻗치는 것은 심각한 취업난도 이유가 되지만, 무엇보다 ‘조건’이 좋기 때문이다. 조건이 좋아 나가려는 사람은 없고 취업 희망자는 많아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대기업 근무’라는 메리트가 있고 채용만 되면 파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어 본전치기(?)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광주공장 기아차의 경우, 고졸 생산계약직원의 초임이 3,000만~3,500만원으로 웬만한 대기업 대졸사원보다 많다. 특히 노사가 2005년 1월1일자로 비정규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데다, 노조와의 협의 없이는 함부로 해고할 수 없어 고용이 안정적이다.
여수산단 정유.화학업체는 전문대졸 생산직 초봉이 3,000만원을 넘고 대부분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돼 있다. 때문에 고용도 보장돼 있고, 취업희망자들이 쏟는 사례비 3,000만원 정도는 1~2년만 근무하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본다.
취업장사는 작게는 한 회사의 위기에서 크게는 국가 경제 전체를 뒤흔들만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부정한 방법으로 취업을 한 경우, 생산력 저하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고, 이는 곧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국내경제를 좌지우지할만한 거대기업인지라 전체 국내경기에도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