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삼성전자가 노사 간 극단의 대치 상황에서 창립 이래 첫 총파업에 나섰다. 총파업이 예상외로 장기화 되면서 노사 간 대화 재개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은 채 ‘강 대 강’ 대립으로 흘러가고 있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고성능컴퓨팅(HPC)·AI(인공지능) 분야 생태계 결집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량 강화에 애쓰고 있지만 ‘노조 파업’이라는 최대 악재를 만났다. 아직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지 않았지만, 노조 파업 장기화가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삼노, ‘무기한 파업’... 생산 차질 의도
노사 간 협상계획도 없어 사태 장기화 가능성이 우려되는 가운데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애초 파업 목적을 ‘생산 차질’로 규정지은 전삼노는 총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빚어 회사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 협상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첫 파업인 만큼 이번 대응이 향후 노사관계의 판단기준이 될 수 있어 밀리지 않으려는 모양새이다.
앞서 전삼노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1차 총파업을 선언하고 ‘생산 차질’을 목표로 파업에 돌입했지만, 사측 태도 변화가 없다며 결국 지난 11일부터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노사 양측이 다시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사측은 전삼노에 ‘노조의 요구안을 포함해 조건 없는 대화가 재개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삼노는 삼성전자 내 5개 노조 중 최대 노조로 조합원 수는 3만2,000여 명이다. 이는 삼성전자 전체 직원(약 12만5,000명)의 25.6% 수준으로, 노조원 상당수는 반도체 부문 소속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삼노는 사측에 최종 요구안으로 ▲전 조합원 임금 기본 인상률 3.5% 적용 ▲조합원 노조 창립휴가 1일 보장 ▲성과급 제도 개선 ▲무임금 파업으로 발생한 조합원의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을 제시한 상태에 있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6·7·8라인은 아직까지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수작업 반도체 생산 라인이다. 전삼노은 “8인치 나아가 HBM 라인까지 멈춰야 회사가 정신을 차린다”며 파업 참여를 독려했다.
전삼노는 “사측의 태도 변화는 생산 차질이 발생해야 있을 것이라며 HBM 포토(장비)를 세우면 사측에서 바로 피드백이 올 것”, “EUV(극자외선) 파운드리도 멈추자” 등을 주장하고 있다.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사업장 특성상 생산라인이 한번 멈추면 천문학적 손실이 생긴다. 칩 한 개를 만드는데 최소 3개월이 걸리는데 장비가 멈추면 중도 폐기해야 한다.
현재 노조가 공개한 파업 여파는 ▲8인치 생산량 감소 ▲8인치 지원 인력 요청했으나 지원 인력도 파업 ▲평택 파운드리 특정 부서 파업으로 검사 대응 안됨 등으로 천안, 화성, 평택 등 광범위한 라인에서 생산 차질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생산 차질 발생 주장에 대해서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일부 삼성전자 직원들도 첨단 반도체 라인의 경우 상당 부분 자동화가 되어 있어 파업 여파가 적다고 분석한다. 상대적으로 수작업 비중이 높은 8인치 공정에 노조가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8인치 공정은 자동차·가전 등에 쓰이는 레거시(구형)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라인이다. 삼성전자 전체 반도체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낮은 데다 가동률이 떨어져도 생산 차질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진단이다.
사측 관계자는 “아직 보고된 생산 차질은 없으며, 생산 차질이 없도록 철저히 대비할 계획”이라 밝혔다.
‘총파업’ 반도체 경쟁력 둔화 우려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력인 반도체 분야에서 15조원의 적자를 기록한 후 올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파운드리 부문에서 경쟁 기업인 대만의 TSMC는 제품 생산을 맡기겠다는 빅테크 고객사들이 줄을 서 있는 반면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주문한 기업은 일본 프리퍼드네트웍스 정도뿐이다. 노조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은 삼성전자가 적자 터널에서 빠져나온 가운데 직면한 것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가 크다.
삼성전자는 최근 연결기준 잠정실적을 통해 올해 상반기 매출액 145조9,200억원, 영업이익 17조1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17.92% 늘고, 영업이익은 130배(1198.47%↑)로 불어났다. 특히, 영업이익 증가 폭이 1분기(931.87%↑)보다 2분기(1452.24 %↑)에 더 커져 업황 개선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번 노조 파업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 개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과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치열한 전쟁터이다. 올해 2분기 대만 TSMC의 ‘HPC’ 매출이 또다시 급증했다. 삼성전자도 최근 HPC의 매출 비중을 높이려고 하지만 TSMC의 HPC 매출 확대 속도가 워낙 빨라 양사의 HPC 매출 비중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삼성전자는 창사 첫 '무기한 파업'이라는 최대 위기에 직면하며 노동조합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을 둘러싼 글로벌 업황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파업은 회사, 나아가 구성원들의 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누구를 위한 생산 차질, 누구를 위한 파업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