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의 연 1회 실시 의무화가 이루어진지 6년이 지났음에도 예방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불과 29%로 나타났다. 이것은 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장과 사업주 및 근로자가 모두 하나의 성으로 구성된 특례사업장을 제외한 결과다. 직장 내 성희롱이 여성근로자의 근무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화된 제도들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방교육 의무 ‘모른다’ 절반 이상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는 작년 1월부터 10월까지 평등의전화 상담 중,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상담 243사례를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의 유형과 형태, 예방교육의 실효성 등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전국 9개 지역 현지 사업장의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반영됐다.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상담은 평등의전화 상담 중 9.2%를 차지하는 비율. 상담자들은 충격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물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의하면 성희롱 유형은 신체적 성희롱이 60%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언어적 성희롱(35%), 시각적 성희롱(1.2%)로 이어졌다. 성희롱 가해자는 상사가 55%로 가장 높았고, 사장은 그 다음으로 28%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의무화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연 1회 실시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모른다’라는 응답이 61.5%나 기록됐다.
예방교육은 사업장의 규모가 클수록 실시하는 경우가 많으며, 업종은 단순노무직이나 판매직이 낮은 실시율을 보이는 반면, 사무직이나 고위관리 전문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예방교육 실시율을 나타냈다. 반면, 고용유형별로 정규직의 29.9%에 반해 비정규직의 18.7%만이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관계자는 “직장 내 성희롱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성희롱으로 인정받기 어려울뿐더러 대개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많아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부강사 30분 강의, 장난하냐?
예방교육을 실시하더라도 그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성희롱 이 법제화되면서 예방교육이 의무화됐지만 현재 예방교육과 관련해 실시여부만을 형식적으로 보고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예방교육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 중 교육시간에 대해서는 1시간 이내는 57.7%, 30분 내가 28.9%, 1시간 이상은 13.3%로 드러났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회사의 관리과장 총무부장 등 인사담당자들이 주로 강의를 맡는 내부강사에 의한 교육은 95%가 30분 이내로 이루어졌다. 외부강사의 경우 5%만이 30분 이내 교육을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결과를 보인다. 내부강사에 의한 교육은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음으로 인해 효과성이 담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의 자체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짐을 유추할 수 있다.
그나마도 강의로 교육을 하는 것은 다행. 교육방법으로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에 미비하다고 판단되는 단순한 자료 회람이 29.3%, 비디오 시청이 20.4%를 차지해 강의 같은 적극적 교육은 아예 실시하지 않는 사업장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단절로 이어져이번 조사에서 상담자의 업종별 특징을 살펴보면 사회개인서비스업이 40.4%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직종은 사무직이 47.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주로 여성들이 집중돼 있는 업종과 직종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사업장 규모 면에서도 20~29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는 비율이 26.1%로 가장 높았고, 10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비율도 35.1%로 나타나 여성들이 주로 소규모 영세사업장에 분포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줬다.
상담자를 근무년수별로 나누어보면 1년 미만 44.2% 1~3년 미만이 33.5%, 3년 이상 22.3%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관계자는 “1년 미만인 경우 44.2%라는 높은 상담 비중은 직장 내 성희롱이 여성 노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평등의전화 내담자 가운데 퇴사한 이후 상담하는 비율도 23.8%나 차지하며, 상담하는 과정에서도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잘 증명한다. 성희롱이 고용단절로 이어짐으로써 여성고용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는 “일을 시작한 이후 부딪히게 되는 성희롱 경험은 일을 지속하기 힘든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이 여성의 근로조건을 크게 훼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위반시 300만원 이하 과태료
예방교육은 차치하고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몰라라’ 하거나 오히려 고발자를 비난하거나 해고하는 사업주도 있다. 광주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에 직장내 성희롱 고민을 호소했던 53세의 주부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했던 이 여성은 자치회 이사로부터 수차례 걸쳐 언어적 육체적 성희롱을 당해오다 고소했는데 이를 이유로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 가해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횡령 업무태만 명예훼손 등을 들어 20여건의 고소를 제기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에 따른 과태료 200만원이 부과됐으나 사업주가 이를 불복해 재판 청구, 현재 법원 계류 중이다. 법률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위반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직장내 성희롱 발생시 조치 위반시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동료 직원이 성적 모욕감을 주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만큼 고통을 겪은 피해자도 있다. 이 여성은 사업주에게 사실을 알렸으나 조용히 넘어가자는 반응을 보여서 결국 법적 조치를 모색하게 됐다.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사업주를 설득한 결과 가해자는 전체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가해자를 피해자와 부딪치지 않는 부서로 배정했으며, 사업주는 향후 성희롱 행위 재발시 강력 조치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 같이 성희롱에 따른 부당한 피해에 법적 대응으로 맞서는 사례들은 예전에 비해 늘고 있다. 하지만 예방교육이 선행됐더라면 피해자의 상처는 물론, 사업주 또한 곤란에 처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기본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희롱 없는 고용환경이다”며, “성희롱 예방교육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활동과 관리 감독, 벌칙 조항 강화 등의 구체적인 활동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