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장지동 609번지 일대에 가면 아직도 천변가로 천막을 친 사람들이 새우잠을 잔다. 길게는 20년째 짧게는 수년씩 비닐하우스 한동에 대여섯 가구가 사글세 살이로 연명해 온 사람들은 모두 합쳐 182세대 약 500여명.
그나마 이중 166세대 331명은 지난 10월7일 새벽 발생한 전기누전 화재로 모든 걸 잃어버렸다. 노약자 30여명이 들어앉으면 빼곡히 차는 간이 마을회관. 화훼마을로 불리는 약 2500여평 일대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우스 한동에 토지세 10만원씩 내고 살았다
지난 1987년 서울시내 방한칸 얻기 처참한 가난을 업고 이곳에 들어온 천정숙씨는 지금 아픈다리를 절룩이며 ‘임대주택 쟁취’투쟁위원장이 됐다. 20년을 지하수조차 오염돼 여름 가을할 것 없이 파리가 들끓는 이곳에서 온갖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 온 그이와 한동네 가족같은 끈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성남 복정동 인력시장의 일용노동자고 서울 가락시장의 야채다듬이 꾼이며 부도난 사업으로 찢어질 듯한 가난을 질긴 운명처럼 붙들고 산 이들.
“지주한테 그나마 50만원에 월6만원 약속종이 한 장 쓰고 여기 왔다. 그렇게 한 두 가족씩 모였다. 하우스 40평 1동에 토지세 10만원씩들 내고… 그러면서.”
천 씨는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화재가 벌써 네 번째”라며 “길게는 20년을 살며 6년전부터는 주민등록까지 만들어 살았는데 그나마 이주할 때 까지만이라도 살게 놔두지 허구헌날 땅주인이 (그 송파 동남권유통단지이후로) 비켜달라는 통에 불까지 빈번해 속이 탄다”는 토로다.
차라리 도로로 나가 죽으라고 하지…
불이나도 비닐하우스촌이다 보니 건물피해액 산정이 거의 없는 실정. 몸 하나로 생계를 이어온 사람들은 모래위에 쌓은 보잘것없는 탑 ‘비닐하우스’가 원망스럽기만 할 뿐이다. “새벽에 일어난 불에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노인네들 업고 나오느라 이불하나 못건지고 한전을 찾아 전기공급을 요청한 지 한달여 넘은 이제야 간신히 전기공사를 하고 있다.”
마을회관. 어수선한 옷무덤을 낀 채 잠들거나 기댄 사람들. “5%는 아마 그럴지 모른다. 임대아파트 딱지보고 여기 버틸지도. 관에는 그렇게 비춰지기도 하겠지만 그럼 우리같은 95%는 어쩌란 말인가. 이제 한걸음 뗬다. 오늘은 송파구청을 찾았지만 내일은 SH공사로 갈꺼다. 서민 집지어 준다는데 아닌가 거기가.”
겨울이 버거운 듯 썰렁한 비닐하우스촌을 나와 정면을 건너다보니 SH공사의 장지지구 임대아파트 건설현장이다. 20년을 집없이 남의 땅에 하우스를 치고 산 사람들. SH공사는 이 임대아파트가무주택자고 주택청약통장을 갖고 있으며 부모를 모시고 있는 세대주에게 우선 공급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