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권고에 따른 정부대응에 이목 집중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Human Rights Commitee)는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로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윤지석, 최진영씨(가명)의 진정 사건에 대한 심의 결과를 통보하며 이 같이 권고했다. 이번 유엔의 권고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우리 정부는 90일 이내에 재발 방지의무 등 어떤 개선 조치를 취했는지를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사회당은 “우리는 안보 논리로 종교와 양심의 자유의 근본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긴 유엔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환영 한다”며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따가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편, 이번 권고를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들의 개인청원이 쇄도할 것으로 보여 정부가 어떤 조치를 내릴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군, 내년 6월까지 연구결과 발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논란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2001년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들의 오랜 병역거부 사례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다. 또, 같은 해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가 이어지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급속하게 확산됐다. 이처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언론, 학계, 법조계, 종교계 등은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도입에 관한 각종 토론이 진행했다. 또한, 이듬해인 2002년 2월에는 1,552명이 서명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 및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1000인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국가위원회는 지난 해 12월 대체복무제를 국회의장에게 권고했고, 국방부에서는 올 4월부터 민·관 공동연구위원회를 구성, 대체복무 제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위원회 내부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 내년 6월까지 연구 일정을 연장했으며, 연구결과가 나오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해 대체복무 도입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병역거부는 곧, 감옥으로 이어지는 공식
평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고재선씨(무직, 28세). 고씨는 산업기능요원으로 경기 오산시 소재 대광다이캐스팅㈜에서 2000년 10월부터 2002년 5월까지 근무했다. 그러나 이후 고씨는 3주 기초 군사 훈련 소집을 통보받았고,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양심적병역거부를 했지만 2002년 10월 31일 현역병으로 징집되었다. 이를 불응한 결과 재판을 받게 됐고, 담당판사는 피고인의 종교적 신념이 바뀔 수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고씨는 1년 6개월 미만의 실형을 선고 받았기에 재 징집 대상으로 분류됐고, 억울한 마음에 검사에게 항소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됐다. 그러던 중 고씨는 2003년 11월 현역병으로 재 징집 됐고 이를 다시 불응하자 결국 구속됐다. 판사의 직권보석으로 석방되긴 했지만, 심리는 계류 중에 있는 상태다. 고씨는 “죄인취급이라도 받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고씨는 평소 꿈꿔왔던 선생님의 꿈을 포기하는 것 뿐 아니라 취업 제한 등의 사회적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고씨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경우 예외 없이 1년6개월에서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지고, 일반 재소자들과 달리 이들은 가석방 심사 기준에 있어서도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논쟁만 있고, 대안은 제자리 걸음 반복

대체복무에 대한 찬·반 논쟁은 오랜 시간 지속돼 왔다. 그렇지만 병역거부자를 대하는 우리의 현주소는 논쟁만 있을 뿐 제도 도입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한홍구(47·성공회대 교수) 공동집행위원장은 “병역 문제에 대해 굉장히 잘못된 인식이 있다”며 “국가주의·군사주의·반공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인데, 한국에서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조차 군사주의에 예속돼 병역 거부 문제가 심각하게 구제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최정민(평화인권연대)공동집행위원장의 인터뷰를 통해 양심적병역거부자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이름에서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는데, 흔한 반응 중 하나가 ‘나는 양심이 없어서 군대갔다왔냐’는 것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양심’이란 단어는 일상에서 ‘어진마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오해를 자주 불러일으킨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서 ‘양심’은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양심의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의 양심은 어떤 사람의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 일체를 말한다. 인권에 대한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군대를 갔다 왔느냐 거부했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자신의 가치체계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양심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대체복무제는 어떻게 도입돼 실시되고 있나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된 시기나 각 국가별 특성으로 이런 제도의 내용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적으로 군사 분야와 관련 없는 사회봉사 분야에서 이들이 병역의 의무를 대체하여 사회적으로 차별 받지 않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기간은 예비군 등을 면제해주는 것을 감안해 복무기간이 현역병 복무기간의 1.5배 이상일 경우 이것을 대체복무가 아닌 거부자에 대한 처벌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가 도입된다면, 누가 군대에 가겠는가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 대체복무 판정을 받을 목적으로 종교나 양심을 가장할 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를 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민간대체복무제도의 근본 취지는 법적/제도적 보장이 없어 감옥에 가야만 하는 소수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국민적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이용가능성만을 우려하여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매년 600여명 이상 발생하는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전과자가 될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만 살피더라도 수만명에 달하는 광범위한 병역특례제도가 상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복무기간도 길뿐더러 사회복지시설에서의 사회봉사를 위해 종교나 양심을 가장하면서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되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