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혼자 체육관에 나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친 듯이 뛰기도 했습니다."
한국전력이 4연패를 당하는 동안 가장 맘고생이 심했던 선수를 꼽자면 단연 세터인 권준형일 것이다.
권준형이 신영철 감독의 타깃이 되는 장면은 쉽게 목격된다. 현역 시절 '컴퓨터 세터'로 통했던 신 감독은 승패와 관계없이 권준형의 플레이에 종종 불만을 나타낸다.
신 감독과 권준형은 14일 우리카드전을 앞두고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신 감독은 "지금 도망갈 곳이 있느냐. 도망가는 것은 배구를 그만 두는 일 뿐이다"면서 자신감을 잃은 권준형을 호되게 질책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권준형은 우리카드전에서 한층 안정적인 토스로 팀에 3-0(25-22 25-18 25-22) 완승을 이끌었다.
권준형의 지원을 받은 얀 스토크(22점)와 전광인(11점), 서재덕(10점)은 모두 50%가 넘는 공격 성공률과 두 자릿 수 득점을 기록했다. 최석기와 방신봉의 센터진 또한 허를 찌르는 속공으로 힘을 보탰다.
권준형은 "감독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대로 도망칠 수 없으니 코트에서 잘하던 못하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지난 경기보다 더 컸다"고 소개했다.
권준형이 리그를 대표하는 세터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본인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
권준형은 "(한)선수형이나 (유)광우형, (이)민규에 비해 내 실력을 잘 알고 있다. TV로 그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나는 왜 안 될까'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서면 잘 안 된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권준형은 "공격수가 힘들게 때려야 하는 공을 보냈던 것 같다. 블로킹에 걸렸던 것도 많았다"면서 자책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권준형이지만 신 감독의 지도 속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권준형은 "감독님이 세터 출신이시니 나에게 말씀을 많이 하신다. 많이 배워야 한다"고 웃었다.
누구보다 세터의 맘을 잘 알고 있는 신 감독은 "오늘 준형이가 잘했다.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잘 극복했다"면서 "이번을 계기로 어떤 난관이 와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조금이나마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모처럼 박수를 보냈다.
연패 기간 중 홀로 체육관을 찾아 소리를 지르고 원 없이 달려보기도 했다는 권준형은 앞으로는 소심한 성격을 버리고 활발한 선수로 변신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에는 혼자 방에서 꿍하게 있었는데 이제는 소리를 좀 질러보려고 한다. 답답해서 앓는 것보다 나가서 소리 지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권준형은 "코트장에서는 생각보다 내성적인 편인데 성격을 좀 고쳐야 할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