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독일 극우 세력의 시위를 발발케 하고, 독일과 러시아 정부간 공방으로 치달았던 ‘러시아계 독일 소녀 성폭행’ 사건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사건 피해자로 알려진 13세 러시아계 독일 소녀는 난민에게 납치돼 성폭행 당했다는 진술이 꾸며낸 것임을 인정했다고 독일 검사들이 밝혔다.
31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리사’로 불리는 10대 소녀는 지난달 11일 베를린 마르잔 구(區)에서 실종됐다가 약 30시간 뒤에 얼굴에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됐다.
리사는 부모에게 중동 혹은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런 소식이 소셜미디어(SNS)에서 널리 알려지면서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계 독일인들은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소녀가 사흘간 수사관의 집요한 추궁 끝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자백했다”고 마틴 스텔트너 검사는 밝혔다. 이어 “학교 측이 해당사건과 관련해 부모에게 연락하자 리사가 집에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부연했다.
연말연시 쾰른에서 벌어진 난민들의 집단 성폭력 사건으로 난민에 대한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베를린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페기다)과 연계된 ‘바르기다’(Bärgida) 운동 단체의 지원으로 러시아계 독일사회 단체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극우 독일민족민주당(NDP) 역시 마르잔 지역에서 시위를 개최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국영TV가 독일정부가 난민의 성범죄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소녀 친척의 발언을 보도해 상황이 악화됐다.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지난 달 26일 기자회견에서 “소녀가 실종됐다는 보도가 오랜 기간 은폐됐다. 이 문제가 양탄자 아래로 먼지를 쓸어넣듯 숨겨지지 않길 바란다”며 독일 정부를 비난했다.
이에 독일 정부도 지난 달 27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라고 러시아에 경고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선전으로 이용할 어떤 근거나 정당성도 없다”며 “러시아는 독일 사법당국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에만 집중하기 바란다”고 반박했다. 스테판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도 “베를린시 사법당국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사건을 정치적으로 몰아가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13세 소녀의 핸드폰 기록을 추적한 결과,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은 친구와 같이 밤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소녀 부모는 유력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리사의 행실이 나빴다”며 현재 리사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