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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커버] 체육계 성폭력, 그 침묵의 카르텔 깨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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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17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범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 대한 사퇴론 증대
문재인 대통령, 강도 높은 쇄신책 주문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행 가해 의혹 사건을 통해 체육계의 성폭력 범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체육계 미투는 그피해대상이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였다는 점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심석희 선수의 용기있는 고발

단순 상습 폭행 사건으로 치부될 뻔 한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사건이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 심석희 선수(한국체대)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심 선수의 변호인은 지난 8일 심 선수가 2014년께부터 조 전 코치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2014년 당시 심석희는 만 17세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고소장에 는 당시 시작된 성폭행이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을 한 달 남짓 앞둔 1월 중순 까지 계속됐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심석
희 측은 고소장을 통해 조 전 코치가 초등학교 때부터 절대 복종을 강요했고, 주변에 알리지 못하도록 협박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심석희 측은 변호인을 통해 "지도자가 상하관계에 따른 위력을 이용해 폭행과 협박을 가하고, 약 4년간 상습적인 성폭행을 해온 사건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묵과해서는 안 될 중대한 범죄 행위"라며 "피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가대표 선수로서, 여성 피해자로서 당할 추가적인 피해와 혹시 모를 가해자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다. 큰 상처를 받을 가족들을 생각해 최근까지 이 모든 일을 혼자 감내했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너무 막대하고,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서 안 된다고 생각해 가족,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 사건을 밝히기로 용기를 냈다"고 강조했다.

확산되는 체육계 미투 증언

전·현직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현직 지도자, 빙상인으로 구성된 젊은빙상인연대가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한국체대) 외에 성폭력 피해 선수가 더 있다고 주장했다. 젊은빙상인연대는 9일 성명을 내고 "심석희가 용기 있는 고발을 했다. 자신을 가르쳐 온 코치(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로부터 10대 때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라며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밝혔다.

이들은 "심석희의 용기 있는 증언이 또다시 '이슈'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며 "과연 심석희 혼자만이 성폭력의 피해자겠는가. 꾸준히 빙상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비위를 조사해 왔다. 조사 결과 심석희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도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젊은빙상인연대는 "그간 선수들의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오히려 고발이 선수들에 대한 2차 피해와 보복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심석희의 용기 있는 고발을 통해 누군가 큰 고통을 안고 숨 죽여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전 유도선수 신유용(24)씨가 지난 14일 고교 시절 지도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신 씨는 영선고 재학시절인 2011년 여름부터 고교 졸업 후인 2015년까지 유도부 A코치로부터 약 20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 진료를 강요받았다는 내용까지 있어 충격적이다.

지난해에는 "아내가 의심한다"면서 A코치가 500만원을 건네면서 회유했다고 폭로했다. 신 씨는 지난해 3월 성폭행 혐의로 A코치를 고소했다. 신 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현재 사건은 수사 촉탁으로 인해 시한부 기소중지가 이뤄졌으며 서울 중앙지검에서 피의자 관련 수사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성년자 그루밍 성범죄라 심각성 커

현재까지 증언된 체육계 미투의 특징은 미성년자인 학생시절부터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간의 미투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즉 그루밍 성범죄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그루밍 성범죄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어린이나 청소년 등 미성년자를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이뤄지는데,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당시에는 자신이 성범죄의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두 사건의 피해자 모두 피해시점에 어떠한 이의제기나 거부의사를 표명할 수 없었다. 운동선수로서의 현재 및 미래에 대한 전권을 코치가 가지고 있었기에, 또한 코치가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기에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또한 선수 생활 이후 지도자로 국내에 발붙이기 위해서라면 유력 코치에게 줄을 서야 하고, 코치·감독의 말은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체육계 문화도 한몫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이러한 점을 인정한다. 교총은 "이번 사태의 이면에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의 문제가 깔려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어린 특기생 선수들의 성적과 지도자의 성공이 밀접하게 얽혀 강압적 행동을 수반하고,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고 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쇄신안?..사퇴만이 책임 있는 자세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최근 불거진 체육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사과하며, 대책도 함께 내놓았다. 이 회장은 15일 오전 11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22차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앞서 사과문을 낭독했다.

이 회장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내 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용기에 위로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지원과 성원, 격려를 해 준 국민 여러분과 후원해준 정부, 기업 여러분들에게도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한 "정부와 긴밀한 협의 하에 조직적 은폐나 묵인, 방조 시 해당 연맹을 즉각 퇴출시키겠다.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며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는 것 또한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광범위하고 철저한 심층 조사를 실시하여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 최고 책임자로서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하고 정상화시키겠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쇄신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 대한 사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체육계연대는 15일 오전 10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세 단체의 시위단 12명은 '이기흥 회장 사퇴! 성폭력 사건 방관, 방조한 대한체육회는 책임져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최동호 스포츠연구소장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게 묻는다. 16세 소녀가 피눈물을 흘릴 때 어디 있었나"면서 "취임 직후 규정을 어기면서 본인 사람들을 체육회로 데려와 인사 난맥을 초래했다. 이기흥은 책임도, 능력도, 자격도 없는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이대택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이번 문제는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누적된 문제이고 체육계에서도 잘 알고 대한체육회도 잘 아는 문제"라면서 "해결할 마음도 없고 해결책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대한체육회가 이 문제를 방관 방조했으니 이기흥 회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범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체육계 성폭력은) 지속적으로 이런 문제를 은폐하고 수수방관한 결과물"이라면서 "대한체육회가 책임을 지고 있는데 오히려 체육회가 학생들을 병들게 했다. 그 책임을 모두 지고 정화작업을 해야한다"면서 이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 강도 높은 쇄신책 주문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제2, 제3의 체육계 성폭력 '미투'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목소리가 높아지자,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성폭력 근절을 위한 스스로의 강도 높은 쇄신책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이번에야 말로 근본적인 개선과 우리 사회의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 드러난 일 뿐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한 조사와 수사,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사나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이 폭력이든 성폭력이든 어떤 피해에 대해서도 2차 피해가 없도록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이라며 "조사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폭력이든 성폭력이든 어떤 피해에 대해서도 2차 피해가 없도록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체육 분야 성폭력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해 여성가족부(여가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머리를 맞댔다. 성폭력·성희롱 근절을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여가부는 17일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 향후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여가부와 문체부, 교육부 등 3개 부처는 차관과 담당국장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운영한다. 여가부는 관계부처와 함께 2월 중 범정부 차원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또 체육단체나 협회, 구단 등의 사용자나 종사자가 성폭력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경우 최대 징역형까지 형사 처벌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을 적극 추진한다. 아울러 성폭력 신고센터 전반의 문제점을 조사·검토하고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문체부는 추후 장기적인 체육계 쇄신방안 등 근본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학교운동부 운영 점검 및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문체부와 협력해 학교운동부 지도자 비위행위에 대한 징계 절차 개선, 자격 관리 시스템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 등을 중심으로 사이버, 법률전문가 등을 보강한 전문수사팀을 구성한다.

관계부처들은 오는 25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향후 대책 추진 방향을 논의하고 2월까지 전문가 간담회와 현장 의견 수렴을 통해 과제를 발굴한다. 발굴된 과제 중심으로 2월 중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을 마련하고 체육계 쇄신방안 등 근본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스포츠계 성폭력에 대해 ‘입법’으로 보호 강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10일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의 폭행 사건을 계기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스포츠 지도자가 되려면 국가가 정한 폭행 및 성폭행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며 선수 대상 폭행·성폭행죄에 대한 형을 받은 지도자는 영구히 그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형 확정 이전에도 2차 피해를 방지하며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지도자의 자격을 무기한 정지시킬 수 있으며 기존 대한체육회에 소속돼 징계 심의를 담당하던 위원회를 '스포츠윤리센터'라는 별도 기관으로 독립시키는 게 골자다.

안민석 의원은 기자회견 후 취재진과 만나 "이 문제는 여야를 초월해서 함께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체육단체와 선수들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20대 국회가 지속적으로 집요하고 강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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