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화순 칼럼리스트] 일제 강점기였던 1924년 11월 10일과 24일, '동아일보' 에스페란토 고정란에는 괄목할만한 호소문과 선언이 실렸다. ‘조선 에스페란토어 연맹’의 ‘호소문’(“Alvoko” al karaj niaj gefratoj)와 ‘선언’(Deklaro de la Esperantista Federacio Korea)이 그것이다.
그 호소문과 선언문 속에는 ‘일본의 언어제국주의에 반대하고 각 민족은 개개의 자연어를 사용하고, 인류는 에스페란토를 공통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인의 글과 말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주권마저 빼앗은 일본에 대항하려는 에스페란토협회원들의 독립선언문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KEA. 회장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조선에스페란토협회가 전신인 한국에스페란토협회는 코로나팬데믹으로 인해 주요 행사들을 온라인 줌(ZOOM)으로 펼치기로 했다.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온라인 줌(Zoom)으로 52차 한국대회와 협회 창립 100주년 행사, 2차 상하이-서울 에스페란토 포럼 관련 15개 행사를 진행한다.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함께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면서 AI 시대 에스페란토의 역할 등에 대해 생각해본다.
협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특별하게 열리는 52차 한국 에스페란토 대회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공어 에스페란토의 미래’를 주제로 독일 야콥스 대학 프란체스코 마우렐리 교수의 ‘인공지능과 로봇공학:기회인가, 위기인가?’와 미국 일리노이주 엘사의 던칸 차터스 교수(프린시파 대학)의 ‘AI가 선도하는 새로운 세계 속 에스페란토’란 제목의 강연이 열린다.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전경덕의 ‘일제 강점기에서 현재에 이르는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 100년사’ 강연, 독립운동가 이재현, 교육자 신봉조, 나비학자 석주명, 시인 김억, 변영로, 정사섭, 이은상 등 주요 에스페란토를 다루는 정원조의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의 선구자’와 안중근 의사의 ‘코리아 후라’ 세계 공통어 삼창 관련 강연 등이 열릴 예정이다. 또 2차 상하이-서울 에스페란토 포럼에서는 양국의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한국의 중국의 음식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중학교 1학년때 에스페란토를 접한 후 51년째 에스페란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서진수 회장은 “나라의 독립을 외친 그 이듬해에 설립되어 자유, 평등, 중립과 세계화를 모토로 성장해온 협회가 1994년과 2017년에 서울서 개최된 세계 대회를 통해 한국과 한글의 위상을 드높였다”면서 “100주년을 맞아 나라말 사랑과 국제어 보급에 더욱 기여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스페란토(Esperanto)는 1887년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1859-1917)가 창안 발표한 국제공통어다. 2020년 현재 72개국에 국가 지부가 있고, 122개국에서 약 50만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구글 번역기의 108개 언어에 에스페란토가 포함되어 있으며, 네이버 번역기 파파고(papago)는 ‘앵무새’를 뜻하는 에스페란토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