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준 세상에 사랑을 베푼다
독거노인 돌보는 뇌성마비 장애인 문재진 씨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다. 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장애인이면서 유독 신체적 장애자에게 무시와 천대를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속으로 더 많은 병을 키우고 썩어가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
“사, 사… 산에서 호, 혼자 울기를 며, 며, 몇 십 번했죠.”
한단어 한단어를 얘기하기 위해 문재진(47) 씨는 온 몸을 뒤틀고 오만 인상을 찡그린다. 뇌성마비 2급 장애인. 출생 후 3일만에 경기를
앓고 평생의 짐이 돼버린 상처. 마음은 앞서가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때문에 그 동안 속상하고 슬펐던 적도 헤아릴 수 없다.
“제 모습을 흉내내며 놀릴 때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하며 문씨는 내면의 슬픔을 머금은 채 애써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장 아픈
기억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야만 했던 경험을 고백했다.
“제 장애까지도 사랑해줬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죠.”
허락을 받아오겠다던 그녀는 결국 부모님의 성화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됐고, 그날 이후 그는 산에 올라 혼자 울기를 수차례해야 했다. 눈물은
장애의 고통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를 욕하는 세상에, 그의 사랑을 앗아간 세상에, 사랑을 베풀고 있다.
열 명의 양어머니 10년간 보살펴
서울시 송파구 마천동 일대 독거노인 열 명에게 그는 10년이 넘도록 매달 용돈과 음식을 챙겨주고 있다. 9월부터 12월까지 달력영업으로
1년을 살아가는 어려운 살림이지만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평생 저 때문에 가슴앓이 했던 어머니에 대한 보답”이라며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다른 분들에게 효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풍에 걸린 어머니를 꼬박 3년간 대소변 받아가며 수발들고도 그 마음이 모자라다 싶어 다른 이들에게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돌보는 열 명의 할머니에게 그는 유일한 아들이다. 때문에 장례식도 손수 치르고, 방문객 하나 없는 빈소를 3일 밤 꼬박 지키기도 한다.
종종 들러 서로의 외로움을 감싸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기본이다. 매년 2번씩 야외로 나들이도 간다. 올해는 5월26일, 강원도 홍천으로
계획이 잡혀있다. 이러한 선행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는 작년에 송파구 장애극복 대상과 삼성효행상을 수상했다. 수상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칭찬도, 상금도 아니었다. 이웃들의 전과 달라진 시선이다.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가끔 ‘수고가 많네’라고 응원해주세요. 그럴 때는 힘이 나서 자전거 페달 돌리는 속도가 빨라지죠.”
그의 이동수단은 세발 자전거다. 노인들에게 전할 음식을 담기 위해 짐칸을 이어 붙인 개조된 자전거를 타고, 그는 매일 그를 기다리는 양어머니들을
찾아 뵙는다. “시골에 땅을 사서 이분들과 채소도 가꾸고 동물도 기르면서 오손도손 사는 것”이 앞으로의 소망이라고 말한다.
아픈 데는 없냐는 질문에 “옆구리가 시릴 뿐입니다”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 위로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어머니와 그가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이 아른댔다.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그것이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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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