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석은 진한 붉은빛의 투명하고 맑은 보석입니다. 이는 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여섯째 기초석이며 영적으로는 열심과 정성,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한 ‘열정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뜨겁게 감당하며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지요.
사랑에도 차원이 있어 크게 영적 사랑과 육적 사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적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변함이 없지만 육적 사랑은 나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쉽게 변질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아무리 숭고해 보여도 영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사랑은 오직 진리 안에 들어와야만 이루어지는 주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 들어왔다 해서 곧바로 영적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영적 사랑의 정의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래 참을 수는 있지만 자기 이익을 구한다거나, 성내지는 않지만 무례하다거나 이렇게 사랑의 기준에 비추어 한 가지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아직 영적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영적 사랑을 하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외로움이나 허전함이 틈탄다면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마음 안에 영적 사랑을 온전히 채우지 않은 까닭입니다. 영적 사랑으로 채웠다면 전혀 외롭거나 허전하지 않으며 항상 기쁘고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는 자체로 행복하며 줄수록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8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마음을 꼭 닮은 진리 자체이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도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희생시키셨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주는 자체로 행복한 영적 사랑을 소유하여 하나님 안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뒤 생명이 다할 때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세 차례 전도 여행을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열정적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렸지요.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서 걸었던 길은 고되고 험난했습니다. 생명의 위협과 유대인들의 훼방과 핍박이 끊임없이 따랐습니다. 수없이 매를 맞고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추위와 더위를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했지요(고후 11:28~29)
영혼 구원을 위한 뜨거운 열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뜨거움과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는 로마서 9:3에 잘 나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고백했지요. 여기서 골육의 친척이란 혈연으로 이루어진 사람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열정적 사랑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대신 지옥에라도 가겠다 고백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영혼 구원을 위해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바로 홍보석에 담긴 영적 의미입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요한계시록 21:20)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