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영환 칼럼니스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음악가 차이콥스키, 문필가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발레리노 니진스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명장들이다. ‘대장 부라바’라는 영화가 있다. 율 브리너가 주연한 이 영화엔 낯익은 이름의 군사 공동체가 있다. ‘코사크 부대’. 이 역시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싹텄다.
이렇게 보면 우크라이나는 어려울 때부터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사실 어렸을 적엔 소비에트연방공화국(옛 소련) 소속이었지만 그 이름만은 문화적·역사적 향수 때문인지 매우 가까운 나라로 느껴진다.
우크라이나에 비극이 찾아왔다. 그 비극의 시작은 꽤 오래된 일이다. 17세기, 폴란드에 예속되었던 우크라이나 코사크 부대는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당시 러시아에 청한 도움은 러시아의 속국이 되어버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20세기 이후에만도 수 차례 시도된 독립 노력에 힘입어 옛 소련의 해체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찾아온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일까? 힘에 부친 나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우크라이나는 친(親)서방정책의 정부가 들어서고 NATO가입 등을 추진하며 강국 러시아의 심기를 자극한다. 갈등이 심해지고 러시아의 침공 임박설이 쏟아지자 최근 우크라이나는 영국·폴란드와 3자 협력을 통해 反러시아 “동유럽 민주주의 강화”를 주창한다. 350여 년 전 러시아 지배를 가져온 폴란드와 다시 손잡을 수밖에 없는 얄궂은 역사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현지 시각으로 2월 24일 오전 5시 우크라이나 공격을 시작했다. 마치 1950년 6월 25일 미명에 김일성이 기습공격으로 한국전을 일으킨 것처럼.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항복하라고 협박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눈물겨운 저항이 외신을 타고 들어온다. 5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군복 입은 사진과 러시아 군용 항공기 10대를 잡았다는 ‘키예프의 유령(ghost of kyiv)’, 안전한 곳으로의 망명을 마다하고 직접 총을 든 채 수도를 지키는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에 숙연해진다. 어느 국내 정치인은 젤렌스키를 ‘초보 대통령’에 견주어서 많은 비판을 받고 결국 ‘표현의 잘못’이라고 사죄했다.
그러나 나는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이야기기는 한데 이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 주가가 내려가고 있다”는 그의 말이 더욱 안타깝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의 나라 미국과 전 세계 15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 하여 풍전등화의 위기를 구출한 역사의 대한민국이기에, 그래서 오늘날의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기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먼 나라가 아니다. 문화와 역사의 숨결이 마음으로 함께 이어지고, 외세 항전과 독립의 역사가 닮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강력한 동맹을 필요로 하는 그 현실이 우리와 너무도 닮았다. 가깝기에, 가까운 나라 우크라이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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