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개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있다. 사람도 못먹고 못입고 사는 세상에,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주인의 사랑을 듬뿍받고 사는 개들을 부러워하는 심산에서 하는 푸념같은 말일 것이다.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은 인간 삶에 깊숙이 들어와 동고동락을 하는, 하나의 식구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몇 년 전, 프랑스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에 광분하며 전세계적으로 비난을 퍼붓던 적이 있었다. 개고기를 건강보양식의 최고로 생각하던지라, 하나로 단결하여 반박논리를 폈었다.
그러나 요즘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도 엄연히 ‘가족’의 일부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애완동물 대신‘반려(伴侶)동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도 매년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280만여 가구, 서울에서는 6가구 중 1가구가 개와 고양이 등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개 팔자가 상 팔자?
이런 추세에 맞춰 농림부는 ‘동물보호 종합대책’을 최근 내놓았다. 따라서 이르면 2006년부터 애완견을 집 밖에 데리고 나갈 때는 목걸이 형태나 체내 전자칩 등의 인식표 부착하고 목줄과 배변봉투 등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농림부는 동물 학대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투견·경견 등도 학대행위에 포함시켜 위반 때는 6월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위를 크게 높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개·고양이 판매업을 현행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3개월 등 일정 연령 미만의 어린 동물 판매가 금지된다. 현재 애완동물이 죽으면 생활폐기물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도록 돼 있으나 앞으로는 분리 수거하도록 하고, 동물보호법에 반려동물장묘업을 신설해 동물 주검을 인도적·위생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농림부는 이 대책을 바탕으로 내년 중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1991년 법안 제정 뒤 처음 개정되는 것이다.
개정안의 기본방향은 동물보호 체계를 서구권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고 있다. 아울러 개, 고양이 등 버려지는 애완동물 문제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추진 할 필요성도 반영됐다.
성공은 미지수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개정이 무산된 적이 있고, 서구와는 다른 문화적 풍토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당장 미국 등 서구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애완견 체내 전자칩과 배변봉투 휴대 의무화 등에 대해서는 일부 애견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동물보호를 명분으로 몸에 전자 칩을 부착해 관리하겠다는 것은 다른 종류의 ‘학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법제화를 통해 규제와 처벌이라는 ‘칼’을 들이대려는 정부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소득구조의 양극화로 극빈층의 살림살이가 어려운 상황에서 동물전용 장묘업 제도화 등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일부는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문제에 신경 쓸 때냐”며 비판하고, 일부는 “진작 했어야 한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경견행위(개 경주)를 금지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는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해 온 만큼 유목사회였던 서구와는 크게 다른 가치관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애완동물 문화도 단기간에 확산되면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 차이가 커 개정작업이 조심스러운게 사실이라고 농림부 관계자는 말했다.
개고기 식용 문제 제외, 동물 복지 수준에 초점그동안 개정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개고기 식용 문제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었다. 농림부는 개고기 식용 문제는 일단 제외하되, 동물 복지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합의점을 도출해 냈다.
농림부가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든 논란이 불가피한 동물보호법 개정을 재추진하는 것은 해외 동물보호단체의 비난 등으로 더 이상 대책 마련을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달중(金達重) 농림부 축산국장은 “우리의 동물보호 수준이 국가 및 기업이미지까지 훼손할 정도로 열악한 것으로 지적받고 있어 제도개선을 늦출 수 없다”며 “논란이 예상되지만 전문가 토론회 및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까지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버려지는 애완동물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확한 애완동물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등 현황파악이 어려운 상황도 개정을 늦출 수 없게 하는 원인이다. 지난해의 경우 포획 처리된 유기동물은 2만5,000마리로 전년보다 56.3% 늘었지만 버려진 채 전염병 등을 퍼뜨릴 수 있는 개나 고양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개에 물린 사고만 5건인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에 대해 한국동물보호협회 금선란(琴仙蘭) 회장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 할 수 있으나 걱정스러운 것은 개고기 식용 금지 부분이 빠진 점”이라며 “개고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동물보호도 정착되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가 당장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