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섭 연구를 통해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하게 된 것은 두뇌나 근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를 만드는 능력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간이 서로 돕고, 배우고, 사랑하는 능력, 좋은 사회를 만드는 보편적 특성을 지녔음을 과학적, 역사적으로 규명해낸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선하다’
예일대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교수이자 인간본성연구소 소장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가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 진화의 목적과 기원을 밝히기 위한 30여 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했다.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이 책에서 난파선 조난자부터 남극 기지까지, 히말라야 소수 민족부터 대규모 온라인 게임 이용자까지, 기생성 흡충과 개미부터 고래와 코끼리까지, 유전자와 호르몬부터 온라인 플랫폼과 인공 지능 봇까지 인간계, 동물계, 기술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유전학, 진화생물학, 신경학,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경제학, 통계학, 테크놀로지,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깊고 넓은 연구와 통찰을 선보인다.
이런 방대한 탐구 끝에 저자는 단언한다. 우리가 ‘인생 경험, 사는 곳, 겉모습까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인간 본성에는 사랑, 우정, 협력, 학습 능력을 비롯해 탄복할 만한’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고. 우리는 그동안 부족주의, 폭력성, 이기심, 잔인함 같은 어두운 면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어온 반면, 이 밝은 면은 너무 등한시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하나로 묶는 것이 더 많으며, 사회는 기본적으로 선하다’라는 진실을 일깨운다. ‘모든 인간은 세상에서 의미를 찾고,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서로에게 가르치고, 집단을 이루어 협력한다.’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이런 공통된 인간성을 ‘사회성 모둠’이라고 부르면서 구체적으로 ‘개인 정체성 소유와 식별’ ‘짝과 자녀를 향한 사랑’ ‘우정’ ‘사회 연결망’ ‘협력’ ‘내집단 편애’ ‘온건한 계층 구조’ ‘사회 학습과 사회 교육’이라는 8가지 형질을 제시한다.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
이 책은 이러한 ‘밝은 면이 왜, 어떻게 우리 본성으로 진화해왔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좌와 우, 도시와 시골, 종교와 무종교, 내부자와 외부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뉜 세상, ‘정치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이 정점에 달한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서로 알고, 돕고, 배우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 선한 본성과 좋은 사회를 만드는 능력이 장구한 진화 역사 속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빚어지고 우리 유전자에 청사진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분열과 차별,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더라도 우리는 이 청사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럴 경우 번영은커녕 생존 자체가 불가능함을 진화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9000만 년 전 포유류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해 30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 가장 번성한 종, 세계를 정복한 종이 될 수 있었던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건 두뇌나 근력 때문이 아니다. 함께 뭉쳐서 사회를 만드는 이 능력 덕분이다. 저자는 “우리는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애착을 느끼는 종으로 진화 중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공통된 인간성과 밝은 면이 인류 진화의 원동력으로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되어 있음을 생생히 입증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도도한 낙관과 희망의 청사진을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