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부정 파문이 도대체 그 끝이 어딘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 광주 일부 고교를 필두로 한 휴대폰 문자메시지 수능부정은 이제 전국으로 수사범위가 확대, 조사대상만 2,000여명 안팎에 이를 정도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학생들 사이에서 돌던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설이 헛말이 아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사건은 치밀한 준비와 조직적으로 이뤄진 대규모 부정사건이라는 점에서 범죄행위였고,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커닝’이 곪을대로 곪아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적에도 없는 ‘커닝’(원래는 ‘속이다’는 뜻의 cheating이 맞다)은 학창시절부터 사회에 나와 승진·자격 시험에 이르기까지 그 목적과 범위를 막론하고 빈번하게 이뤄져 왔다.
대학가에선 ‘상식’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부정행위는 그래도 ‘애교’에 불과하다. 좋은 대학을 가야 성공한다는 그릇된 인식이 결국은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결과 중심주의로 대입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이번 휴대폰 수능부정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할 수 있다.
휴대폰 커닝 수법은 지난 1993년 광주대 후기대 입시에서 발생한 ‘삐삐 커닝’사건과도 매우 흡사하다. 당시 한 수험생이 시험 도중 시험장을 빠져나와 무선 호출기로 답안지를 전송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러 일당 1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심지어 현직교사가 대리시험을 알선한 사건도 발생했다. 고교 교사가 포함된 입시 브로커 4명이 명문대생 5명을 고용한 뒤 3,000만원~1억5,000만원씩 낸 수험생들을 대신해 대입시험을 치르도록 한 것이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기말고사 시험때는 부정행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상당수 학교들이 ‘찍어주기’로 내신 부풀리기를 한 것이다. 지난해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지역 대학을 다니고 있는 K모(20)씨는 “교사가 문제를 미리 다 가르쳐준다. 답만 외워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입개편안 때도 대학의 고교 내신 부풀리기가 논점이 됐던 것도 이런 이유다.
대학가에서 시험 부정행위는 상식으로 통한다. 학생들은 갖가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커닝을 하고 감독관도 어느 정도는 용인해 주는 분위기다. 서울의 모 대학에 다니는 학생 S모(23)씨는 “조교가 학생들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대리시험이 쉽고, 감독도 허술해 커닝하기도 쉽다”고 말한다. 커닝에 적발되더라도 재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이 학생은 “대리출석이나 레포트, 심지어 졸업논문도 베끼거나 대신 써주는데 학기 시험 커닝이 뭐 그리 대수롭냐”는 식으로 말한다.
사법연수생도 대거 부정올 4월에는 고려대 성균관대 등 서울 소재 11개 명문대 편입시험과 토익 텝스시험 등에서 수백명이 무전기로 조직적인 부정시험을 저지르다 적발됐다. 토익시험을 주관하는 국제교류위원회는 부정 시비가 잇따르자 지난 6월 부정행위특별조사반을 설치하고 부정 행위자의 응시자격 제한을 최고 2년에서 5년으로 올리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불과 석달 뒤인 지난 9월 이같은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다시 토익 부정행위자 54명이 적발됐다. 최근에도 토익과 지텔프(G-TELP)시험에서 미군부대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성적표를 위조해 회사에 제출한 사건이 드러나 전국으로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또 대학 편입학 부정시험 있던 달, 한국산업교육원이 실시한 빌딩경영관리사 자격 취득시험에서도 답안지 바꿔치기, 시험 문제 유출 등의 수법으로 430여명이 무더기로 부당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고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8월 7급 공무원 시험에서 동생 대신 응시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지난 1월 실시된 한의사 국가고시에서도 출제자인 조교가 일부 문제를 사전에 빼돌린 사실이 발각됐다.
시험부정은 심지어 법조계에서도 발생했다. 2002년 6월 사법연수를 끝내고 변호사 진출을 앞둔 사법연수원생이 커닝을 하다 들켜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처음 시행된 변호사윤리시험에서 사법연수생들이 대거 부정을 저질러 시행 3개월만에 폐지위기를 맞았다. 40점 이상 받아야 변호사 등록이 가능했기 때문에 성적을 높이려고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사이버 대학(OCU)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학교에 가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만큼 시험관리가 매우 허술하고 커닝이 자유롭다. 시험을 자기가 원하는 때에 볼 수 있어 미리 시험을 친 학생이 메신저 등을 통해 답안지를 전송해 주는 식이다.
만연화된 커닝은 해외에 나가서도 행해져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미국 국제학교에서 한국인 고교생들이 경비원을 매수해 학기말 시험지를 빼돌려 고득점을 올렸다 무더기 퇴학, 정학 처분을 받은 것.
결과 중심주의와 성공 제일주의가 원인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는 부정시험으로 자칫 ‘커닝 공화국’의 오명을 쓰지 않을지 우려된다. 문제는 커닝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이 부정행위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은커녕, 어쩌다 한 번 할 수 있는 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관리·감독해야 할 감독관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채 시간 때우기에 그치고 만다. 또 일부 교사들의 온정주의나 무관심도 한몫한다. 설사 부정행위를 적발하더라도 당사자의 앞날(?)을 위해 눈을 감아준다거나, 처벌 수위를 낮추는 게 보통이다.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적발 가능성은 적고 처벌정도에 비해 이익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커닝 못하면 손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그러나 부정행위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치열한 입시경쟁과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결과 중심주의, 성공 제일주의 사회풍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수단이야 어떻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출세 지향적 가치관이 팽배한데서 비롯된 문제다.
연세대 황상민 심리학 교수는 “미국 학생들은 커닝을 반사회적 범죄와 동일시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커닝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커닝을 하다 적발되면 퇴학까지도 감수해야 하지만 우리 학교에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