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도영 기자] 또래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9)은 범죄자 신상공개 제도 시행 후 세상에 얼굴·이름 등 개인정보가 공개된 47번째 흉악범이 됐다.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 예방효과 등을 위해 마련된 제도지만, 근본적으로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결정 과정의 투명화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3일 관련 규정에 따르면, 범죄자 신상공개는 2010년부터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근거를 두고 시행돼 왔다.
규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와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닐 경우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특정강력범죄사건은 피의자 성명, 나이, 얼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경찰은 경찰 내부위원 3명과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되는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피의자 신상 공개가 타당한지 검토해 결정한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14년 동안 47건의 신상공개가 결정됐다. 주요 사례로는 2012년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범 오원춘, 2017년 어금니아빠 살인 사건의 이영학, 2019년 전 남편 살인 사건의 고유정, 2020년 N번방 사건의 조주빈, 2021년 세 모녀 살인범 김태현 등이 있다.
정유정 사건 이전 마지막 신상공개는 올 3월 발생한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이경우(36)·황대한(36)·연지호(30)·유상원(51)·황은희(49) 등 5명이었다.
흉악범 신상공개의 국민의 알권리 충족 등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기준이 오락가락하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혐의가 뚜렷하고 중대하다고 해도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되기 전인 것은 물론, 공소제기도 이뤄지지 않은 수사 단계에서 수사기관의 재량에 따라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민 여론이 집중된 사건 피의자의 신상만 빠르게 공개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살인·강도·강간 및 강제추행·절도·폭력 등 5대 주요 강력범죄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237만6508건 발생했는데, 이 기간 신상이 공개된 사건은 0.001%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알권리 등 차원에서 신상공개 제도를 유지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공개 때마다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촘촘히 보완·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경찰이 비공개로 두고 있는 '강력범죄 피의자 얼굴 및 신상공개 지침'을 공개하거나, 구체적 기준을 아예 법률로 명시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대표 변호사는 "공개 기준이나 요건을 법이나 시행령에 구체화해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또는 여론에 떠밀려서 하지 않도록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느냐'는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