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홍역을 치렀던 국민연금이 다시 도마위로 올랐다. 국민연금의 고갈시기가 당초 예상됐던 2047년보다 5년가량 앞당겨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정부가 지난 2003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정치권이 정쟁으로 치닫고 있어 처리가 늦어지는 것도 해결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관리공단도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오는 2030년 경에는 급여의 40%를 기금으로 거둬야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부채 278조원 달해
국민연금의 완전고갈시기가 정부가 예상한 2047년보다 5년 앞선 2042년일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뿐 만 아니라 현 체제안에서 가입자에게 연금을 차질없이 지급하기 위해서는 2004년 기준으로 400조원은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 현재 국민연금 잔액은 3분의 1수준에 불과한 131조원으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개발연구원은 기획예산처 의로를 받아 분석한 ‘재정위험 관리와 중장기 재정지출구조 개선’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히고 국민연금은 기금수익률을 연4.5%라고 가정할 경우 2031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KDI는 최근의 저금리를 반영해 수익률을 연 4.5%로 낮게 계산 국민연금발전위원회가 적용한 연5~7%와는 차이가 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지난 1998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8.16%로 안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2003년과 2004년의 수익률이 각각 7.83%와 5.89%에 그쳤다.
KDI는 연 이자율 4.5%, 임금상승률 연4.0% 물가상승률 연2.0%의 기본가정하에서 기업으로 말하면 총 자산 400여조원 가운데 확보돼 있는 적립금은 131조원에 불과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KDI 관계자는 “부족책임준비금이 278조원을 갖고 부채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금액은 말 그대로 부족한 금액을 나타낸 것”이라면서 “고령화 사회가 머지 않은 상황에서 연금고갈이 앞당겨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10명중 9명 신뢰성 의심
국민들의 불신도 크다. 국민연금 관리공단이 2004년 기준 역금제도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20대와 30대 7.6%와 6.6%만이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50대의 만족율도 11.4%와 28.5%에 불과했다.
연금제도의 필요성과 관련해서도 20·30대는 각각 20.9% 28.5% 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수혜가 가까워지고 있는 40·50대는 40.3%와 71.7%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자신이 나이가 연금수혜 연령에 가까워 지면서 노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삼성경제연구소 밝힌 ‘소비실태조사, 노후불안감 확산에 관한 가계의식 조사’에서도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상당한 수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연금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재정고갈에 대한 우려가 34.7%로 가장 많았고, 강제 가입 및 징수 24.4% 연금보험료 산정의 명확성 및 형평성 결여가 24.3%로 10명 중 9명은 연금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불신의 골이 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민연금을 철폐하는 것이 그리 쉬운일만이 아니다. 고령화 사회가 빤히 보임에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 기능을 제대로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면치 어렵다. 또 국민에게 자신들의 미래를 알아서 책임지라는 하는 것 또한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정권위해 처리 미루는 정치권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맡대기는 했지만 뾰족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2년여에 걸쳐 국회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국민을 볼모로 정쟁을 키운다는 비난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2003년 초 정부는 40년 가입기준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월금 기준 수령액)을 60%에서 50%낮추기로 했다. 보험료 납입 비율도 급여기준 9%(회사부담분 포함)를 5년마다 2.3%씩 인상해 15.9%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폐기 처리됐다.
지난해도 정부는 국민연금 개정안을 다시 제출했지만, 한나라당이 대안을 내 놓으면서 치열한 정치공방으로 시간만 보내면서 또다시 폐기 처분됐다. 올 초 정부가 세 번째로 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여서 처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욱이 여·야 정치권 모두 재정불안에 문제가 있다는 점과 수급급여를 낮춰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기금운영방식에 대해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와관련 모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기초연금제와 함께 현행의 적립식 연금제도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정부안을 수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이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는 사이 기금은 계속 곪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조건부 승인안 통과시킨 후
추후 논의 돼야
이러한 정치권의 주장은 차기 정권을 노리고 ‘모험’을 걸지 않겠다는 시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국민의 반발이 큰 상태에서 국민연금을 계혁하는 것은 향후 정권을 차지하는데 부정적인 역할 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
한국개발원 문영태 부장은 “이미 국민연금 문제는 정부의 손을 떠나 정치적인 문제로 바뀐 상황”이라면서 “여·야 모두 연금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수급급여를 낮추자는데 합의점을 찾았음에도 최종결정이 미뤄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문 부장은 “정치권에서 핵심으로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연금 사각지대에 처한 부분으로 정부와 여당은 행정력 강화로 극복하고, 야당은 기초연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야당의 주장이 적절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금수혜자가 납입자보다 많다는 부분을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점에서 재원조달에 심각한 문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국민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국민연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차기 정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정쟁으로 치닫는 면이 있다”면서 “서로의 공감하고 있는 부분은 조건부 승인을 통해서라도 본회의를 통과시킨뒤 이견이 있는 부분은 향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종명기자 skc113@sisa-news.net